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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퀘이 형제의 전시 준비가 한창인 전주 팔복예술공장에 다녀왔습니다. 급변하는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전시 오픈이 15일에서 20일로 연기되기는 했지만, 전주국제영화제 관계자들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수고하고 계시더군요.

퀘이 형제는 뉴욕현대미술관(MoMA )을 비롯한 여러 세계적인 갤러리에서 전시를 할 만큼 그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워낙 대중성과는 거리가 먼 애니메이터 겸 영상 작가라 국내에서 형제의 전시를 볼 가능성은 거의 전무하다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전주국제영화제 측의 노력으로 올해 퀘이 형제의 한국 전시가 성사될 수 있었습니다. 퀘이 형제의 작품 속 초현실적인 장면을 담은 커다란 전시 현수막이 도시 재생으로 새롭게 태어난 폐공장 건물과 어우러진 모습을 보니 무척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더군요.

 

 

퀘이 형제가 2004년 멕시코에서 우연히 제 금속관절뼈대를 발견하고 연락을 해와 서로 인연을 맺게 된 지 벌써 15년이 넘었네요. 그 당시에도 두 분은 스톱모션 작업자들이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뛰게 되는 거장이었습니다. 또한 작품의 몽환적인 분위기만큼이나 그들 자신도 업계에서는 베일에 싸인 존재였죠.

2005년 봄은 런던에서 팀 버튼 감독의 <유령신부> 촬영이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고, 퀘이 형제와의 첫 협업인 <Sanatorium> 프로젝트가 시작되던 시기였습니다. 이 두 작품 모두에 관절뼈대 제작 스텝으로 참여하고 있던 저는 몇 가지 일을 정리하고자 런던에 다녀왔죠.

<유령신부>를 제작하던 스튜디오를 방문해 그곳 친구들에게 퀘이 형제의 스튜디오가 런던에 있다고 말하자 제작팀이 술렁이기 시작했던 기억이 납니다. 퀘이 형제는 동유럽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다들 추측하고 있을 정도로 미스테리한 존재였으니까요. 며칠 뒤 <유령신부>의 감독과 선임 애니메이터가 퀘이 형제의 연락처를 알려줄 수 있겠냐고 조심스럽게 묻더군요. 이후에 퀘이 형제를 자신들의 스튜디오에 초대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5월 20일 오픈 예정인 <퀘이 형제: 도미토리움으로의 초대 >의 전시장 입구

이처럼 퀘이 형제는 스톱모션 작업자들도 꼭 한 번은 만나보고 싶은 애니메이터이자 아티스트입니다. 왜 이렇게 프로들까지 퀘이 형제에게 열광하는 것일까요? 형제의 작품을 논하는 수많은 논문과 평론이 쏟아지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학자도, 평론가도 아니기에 그러한 글들을 다 이해하기는 어렵더군요.

그래도 스톱모션 업계의 현장에서 일하는 작업자 입장에서 한 마디 하자면, 퀘이 형제의 범접할 수 없는 독보적 작품 세계는 단순히 테크닉이 뛰어나다고 해서 완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관객이 시선을 뗄 수 없도록 만드는 초현실적 미장센. 이건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해도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닌 거죠. 퀘이 형제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를 하나의 영상 예술로까지 승화시킨 대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경지에 도달한 대가에 대한 존경을 표하고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도 퀘이 형제의 스튜디오를 영상 스케치로 담아 <퀘이>라는 다큐멘터리로 만든 게 아닐까요. 그리고 수많은 작업자들처럼 퀘이 형제의 스튜디오에 방문해보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구요…😂

 

 

<UPDATE> ※ 특별 전시 ‘퀘이 형제: 도미토리움으로의 초대(Welcome to the »Dormitorium«)’ 일정이 코로나19가 다시 확산됨에 따라 불가피하게 연기되었습니다. 2020년 5월 20일(수) – 6월 21일(일)

 

천재지변과도 같은 코로나19 사태로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드디어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가 5월 28일부터 6월 6일까지 열립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에 동참하기 위해 무관객 영화제로 진행되는 점은 아쉽지만, 그래도 온라인 상영으로 다양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고 하네요.

올해 특별 기획전에 초청된 작가는 바로 퀘이 형제인데요. 형제의 작품 25편을 상영하는 스페셜 포커스는 추후 장기 상영회에서 공개된다고 합니다. 5월 15일부터 6월 21일까지는 전주 팔복예술공장에서 특별 전시 ‘퀘이 형제: 도미토리움으로의 초대’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형제의 작품에 들어간 몽환적인 세트와 퍼펫을 관람할 수 있어 기대가 되네요. 그리고 퀘이형제의 신작<The Doll’s Breath (2019)>를 위해 제가 제작한 금속관절뼈대도 전시될 예정입니다.

 

2020년 새해가 시작된지 한참 지났는데, 이제서야 올해 첫 글을 올립니다. 그동안 여러 일이 많아 좀 바빴거든요. 늦게나마 지난해 끝자락에 작업했던 광고 두 편을 공유합니다. 그런데 이 시국에 여행 관련 내용을 올리려니 약간 민망하네요.

이번 작업은 콤마스튜디오에서 만든 ‘익스피디아’ 광고로, 2019년 12월에 방송된 밝은 톤의 깔끔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두 편입니다. 러닝타임이 한 편당 15초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 좀 아쉬운 광고죠. 퍼펫의 움직임, 세트의 규모와 디테일 등 들여다볼 만한 부분이 많은데도 말입니다.

이번 뼈대 제작을 의뢰받았을 당시 이 광고 두 편의 총 제작 기간이 한 달 정도밖에 주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듣고 정말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이 정도 분량의 광고는 총 제작 기간이 보통 두 달 정도는 걸릴 때가 많았거든요. 하지만 이번에는 빡빡한 일정으로 인해 뼈대 제작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굉장히 적었습니다. 게다가 뼈대 제작 난이도까지 꽤 높았어요. 하지만 이러한 제약에도 불구하고 완성도 높은 뼈대를 기한에 맞춰 콤마스튜디오에 보낼 수 있었습니다. 작년에 만든 뼈대 중 가장 만족스러운 작품이었죠.

추후에 콤마스튜디오에서 광고 완성본을 받아보았는데,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귀여운 스톱모션이 나왔더군요. 콘티상으로 개별 세트가 10개 정도 필요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한 달 안에 그 세트를 모두 완성해 광고 안에 담은 모습을 보니 놀랍기도 하고요. 다만 아쉽게도 광고가 너무 짧아서 일반 시청자가 그런 면을 눈치채기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번 익스피디아 광고는 작년에 제가 진행했던 마지막 작업이기도 하지만, 한결같은 제 징크스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한 해의 첫 작업과 마지막 작업의 난이도는 늘 동일하다는 제 징크스는 20년 가까이 깨지지가 않네요. 올해도 역시 첫 작업이 만만치 않았는데, 남은 한 해는 어떤 작업을 만나게 될지 기대됩니다…ㅋㅋ

 

 

프리메라 화장품의 <페퍼씨의 하루 – 버스 정류장 편> 광고입니다. 올가을 콤마스튜디오에서 제작된 총 3편의 연작 광고 중 하나이죠.

 

프리메라 화장품의 <페퍼씨의 하루 – 버스 정류장 편> 광고입니다. 올가을 콤마스튜디오에서 제작된 총 3편의 연작 광고 중 하나이죠.

 

콤마스튜디오에서 제작한 프리메라 화장품 광고입니다. 지난달에 공개되었죠. 늘 그렇듯 저는 관절뼈대로 참여했습니다. 이 광고의 첫인상은 참 꼼꼼하게 만들었다는 거예요. 스톱모션의 다양한 세부 기술을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시청자에게는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화면이 실제로는 의도를 가지고 수작업으로 하나씩 만들어낸 장면이죠.

여느 직장에서 볼 법한 사무실의 책상에 무심하게 올려져 있는 파일철의 디테일. 작은 소품일 뿐인 에어컨이 실제로 작동되듯 움직이는 모습. 와이어를 심지 않고도 재미난 움직을 보여주는 종이 인형.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 책상 위로 떨어지는 조명의 차이를 통해 이끌어낸 화면의 깊이감. 퍼펫의 얼굴에 광채 가득한 화사한 피부톤까지.

 

 

이 정도만 봐도 얼마나 꼼꼼하게 광고를 만들었는지 알 수 있죠. 언젠가 얘기했듯 스톱모션 제작에서 이러한 디테일은 바로 자신감의 표현이자 실력의 지표입니다. 특히 상대적으로 제작 기한이 촉박한 광고에서는 더욱 그렇죠. 뒤이어 후속 스톱모션 광고로 도서관 편도 곧 나온다고 하니 기대가 됩니다.

Q. 애니메이션을 전공하는 학생입니다. 이번 수업에서 스톱모션을 배우게 됐는데요. 관절뼈대를 사용해보면 어떨까요?

A. 스톱모션을 시작하려는 예비 애니메이터에게 관절뼈대(armature) 구입 및 사용에 관련된 문의를 받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제까지는 매번 개인적으로 답장을 해드렸는데요. 웹사이트를 통해 답변을 공유하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싶어 이렇게 FAQ를 시작해봅니다.

스톱모션 시작 단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금속관절뼈대에 큰 호기심을 갖게 됩니다. 저도 스톱모션 수업을 처음 들었을 때 가장 신기했던 부분 중 하나가 관절뼈대였죠. 당시는 지금과 달리 관절뼈대에 관한 정보가 전혀 공개되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관절뼈대는 아드만이나 윌빈튼 같은 대형 스톱모션 제작사가 사용하는, 탁월한 애니메이팅의 비결처럼 여겨졌죠.

이런 이유로 한때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관절뼈대만 있으면 순식간에 프로 수준의 스톱모션을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다 겪어본 과정인지라 문의하는 분들이 관절뼈대에 큰 관심을 보이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그렇지만 저는 배우는 시기에 관절뼈대를 사용하는 것에는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첫째, 실력을 키우는 시기에는 다양하고 창의적인 움직임을 시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련된 말 같은 금속관절뼈대보다는 야생마 같은 알루미늄 철사 뼈대(이하 알사뼈대)를 사용하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되죠. 입문자들이 다양한 애니메이팅을 익히고 실험하려면 움직임의 한계 없이 원하는 방향대로 얼마든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알사뼈대가 더 좋거든요. 알루미늄 철사의 유연성을 이용해 하나의 동작을 만들어보며 애니메이팅의 스펙트럼을 넓혀갈 수 있죠.

반면, 금속관절뼈대는 사람의 몸과 마찬가지로 관절의 움직임 반경에 어느 정도 제한이 있습니다. 대신에 정제되고 다듬어진 움직임을 보여주죠. 그러나 마음껏 자유롭게 창의적으로 움직임을 탐구해본 이후에 금속관절뼈대를 사용해야만 그 진면목이 드러납니다. 애니메이터의 실력에 따라 결과물의 편차가 크니까요.

둘째, 알사뼈대를 만드는 과정은 캐릭터의 움직임을 계획하고 연구하는 시간입니다. 스톱모션에서 뼈대는 단순히 퍼펫을 지탱하는 도구가 아니라, 퍼펫의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도구죠. 알사뼈대를 직접 만들어보면 철사를 자르고 꼬아서 배치하는 과정을 거치며 관절의 위치와 움직임에 대해 고민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곧 퍼펫 전체의 움직임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고, 더 나아가 시나리오상의 캐릭터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으로도 연결됩니다. 퍼펫과 뼈대를 만드는 작업을 통해 평면이 아닌 3차원에서 캐릭터의 특성을 입체적으로 구체화하는 과정인 거죠.

이렇듯 알사뼈대를 사용해 다양한 움직임을 자유롭게 탐구하고 근본적으로 고민해보는 경험은 스톱모션 초심자가 기본기를 다지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한번 몸으로 익힌 탄탄한 기본기는 탁월한 실력으로 이어지는 디딤돌이 되죠.

물론 금속관절뼈대의 장점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초심자는 금속관절뼈대의 장점을 제대로 살려내기가 쉽지 않죠. 또한 금속관절뼈대가 다 비슷비슷해 보여도 꼼꼼히 살펴보면 그 품질이 굉장히 다양합니다. 금속관절뼈대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번 글에서 풀어보도록 할게요.

귀여운 냥이 ‘달자’로 심쿵을 불러일으키는 한율의 달빛유자 두번째 광고가 공개되었습니다. 스톱모션 제작은 콤마스튜디오가, 퍼펫의 관절뼈대 제작은 제가 담당했죠.

첫 번째 달빛유자 광고에서도, 이번 광고에서도 느낄 수 있는 점은 바로 콤마스튜디오의 자신감입니다. 광고 작업은 대개 주어진 시간 안에 빠르게 제작하는 것이 관건인데요. 그래서 스톱모션으로 광고를 만들 때는 일정을 맞추기 위해 큰 동작 위주로 작업하게 됩니다.

그런데 스톱모션 광고에서 이렇게 디테일한 동작까지 세세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자신감이 있다는 거죠. 뛰어난 실력과 현장 컨트롤 능력을 갖췄다는 말이니까요. 퍼펫의 동선부터 미세한 표정의 변화 하나하나까지 잡아내는 표현력. 유튜브 댓글만 봐도 사람들이 ‘달자’에게 얼마나 매력을 느끼는지 알 수 있죠.

 

 

2000년 전후로 우리나라에서 갑작스럽게 스톱모션 붐이 일었던 적이 있습니다. 우후죽순 생겨난 스튜디오들이 각자 국내 최고라는 수식어를 내세우면서도 정작 본연의 실력을 작품으로 제대로 보여준 곳은 거의 없었죠.

그런데 콤마스튜디오의 최근 작업을 보면 이제 한국에도 제대로 된 제작 시스템과 마인드를 갖춘 스톱모션 스튜디오가 생긴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장편과 TV 시리즈 제작을 통해 다져진 탄탄한 실력이 일관된 제작 시스템 안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콤마만의 색깔을 드러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