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관절뼈대

 

지난 포스트에서 손톱 위에 놓인 H 모양의 작은 부품을 보여드린 적이 있습니다. 위 사진은 그 부품을 조립한 사진입니다. 작년에 영국의 한 스튜디오의 의뢰로 작업한 작은 손 뼈대에 들어가는 손가락 부분이죠. 이 뼈대에서 가장 얇은 부분의 두께는 1mm도 채 되지 않습니다.

대개 이렇게 작은 경첩관절은 얇은 금속판을 두 개 잘라 서로 단순하게 겹쳐지도록 만듭니다. 그렇지만 저는 부품끼리 정교하게 결합되도록 디자인을 한 다음, 엔드밀로 필요한 부품 하나하나의 형상을 가공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부품을 조립하면 위와 같은 사진의 뼈대가 나오는 겁니다.

2000년대 초는 한참 제 스타일의 뼈대를 테스트하던 시기였습니다. 솔직히 그 당시만 해도 이런 작은 사이즈는 엄두를 내지 못 했습니다. 작은 뼈대일수록 제작 난이도가 굉장히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한 번은 미국의 한 스튜디오에서 총 길이 10센티 정도의 관절뼈대를 주문받은 적이 있습니다. 한 달 정도 작업하다가 도저히 그 쪽에서 원하는 두께를 정확히 맞출 수 없어서 포기했었죠. 주문한 스튜디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자존심도 많이 상해서 그 동안 작업한 뼈대를 전부 무료로 미국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약 1년간 작고 얇은 뼈대만 테스트했었죠.

그때 이후로 꽤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저는 위 사진을 볼 때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듭니다. 참으로 나도 이 업계에서 오래 버티고 있구나라는 생각, 그리고 더 이상 못 만들 뼈대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 등등 말이죠. ㅎㅎ

모치나가 타다히토 감독의 전시 관람

 

작년 퀘이 형제 전시에서는 퀘이 형제가 직접 일본을 방문해 오프닝에 참석했습니다. 작가들이 직접 방문했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하야마로 몰렸죠. 퀘이 형제와의 친분으로 여러 일본 사람들을 만나 교류하느라 정작 전시에는 제대로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올해에는 퀘이 형제의 전시가 도쿄로 이관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꼼꼼이 그들의 전시를 챙겨보고 여름 휴가도 보낼 겸 해서 방문 시기를 조정했죠.

방문 일정이 확정되고 나서 온라인으로 찾아보니 마침 비슷한 시기에 도쿄에서 진행되는 괜찮은 전시가 여럿 있더군요. 그 중에 모치나가 타다히토 감독의 전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일본 초창기 스톱모션을 대표하는 모치나가 감독은 한중일 3국에 모두 관련이 있는 특별한 이력 때문에 예전부터 제가 관심을 두고 있던 인물 가운데 한 명이었습니다.

Imagica TV에서 일하면서 일본의 유명 팝 칼럼니스트이기도 한 친구 야수시 상에게 우리의 휴가 일정을 이야기해주자, 그는 모치나가 전시회에 함께 가자고 제안했습니다. 유쾌한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사진 애호가인 기요시, 신중한 맏형 같은 야수시, 그리고 제 아내와 함께 든든하게 점심 식사를 한 뒤, 우리는 긴자 거리를 지나 도쿄근대미술관 산하 국립영상센터로 향했습니다. 야수시는 국립영상센터에서 그 곳의 총괄 큐레이터인 오카다 상을 제게 소개해 주었습니다.

전시에서는 모치나가 감독의 상세한 작업일지, 인형, 영상 자료, 제작 관련 서류 등 다양한 자료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950년대에 그가 실제로 사용했던 관절뼈대도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가족이 그의 자료를 잘 보관했던 모양입니다. 자료 보존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실감했습니다. 큐레이터인 오카다 상은 직접 전시 가이드를 해주면서 일일이 자료에 담긴 이야기와 자료가 갖는 의미를 제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전시 규모는 작았지만 친절한 그의 설명 덕분에 기대 이상으로 알찬 전시 관람이 되었습니다.

Leffe Ad Campaign: Slow Time

 

위 영상은 한국에도 잘 알려진 벨기에 맥주 브랜드 레페의 광고 캠페인입니다. 시간을 다루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작업에 슬로우 타임이라는 레페 광고의 컨셉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듯합니다.

퀘이 형제가 민들레 홀씨를 핀셋으로 하나씩 떼어내면서 애니메이팅하는 장면을 보고 있자면,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가 않네요. 퀘이 형제의 나레이션을 통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애니메이션과 시간에 대한 개념을 엿볼 수 있습니다. 짧은 영상임에도 이 광고는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The first time that we really began to look closely at the notion of time was by the animation. Because with animation when you’re filming every frame is one twenty-fourth of a second. 24 frames makes one second, so you’re making 24 movements, isolated movements. So right away, you’re, you’re slowing down time by the very nature of the animation technique. …

…but then we come back to the studio and you come up with these doors. You know that this space is hallowed space where time stops. Right away, you understand that this is where time gets severed and it’s opened up.”

 

2016년 여름 퀘이 형제가 일본 순회전시를 시작한다는 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도쿄 인근에서 열리는 첫 전시의 오프닝에 초청한다는 말에 여름휴가도 보낼 겸 일본으로 떠났습니다. 일본에서 유쾌한 시간을 보내고 귀국해 그들과 안부를 주고받던 중에 인터넷에서 이 광고 캠페인을 발견하게 되었죠.

그런데 이 광고 영상을 보다가 보니 퀘이 형제의 차기 작품에 사용될 금속관절뼈대(armature)가 등장하더군요. 깜놀했습니다. ^^; 이 광고 영상을 발견했을 당시는 제가 퀘이 형제의 프로젝트에 뼈대 전문가로 참여해 의뢰받은 뼈대를 모두 완성하고 영국으로 발송한지 한 달도 안 된 시점이었습니다. 사실 금속관절뼈대는 인형의 내부에 들어가 인형을 지지하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외부에 노출이 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제 관절뼈대가 깜짝 공개되어 놀라기는 했지만, 광고에 멋지게 등장하니 그것도 나름 뿌듯하네요.

광고 영상을 통해서 2016년 상반기에 열심히 작업한 결과물을 보고 있자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퀘이 형제의 프로젝트 참여는 20년이 다 되어 가는 제 금속관절뼈대 전문가(armature specialist) 경력에 아주 의미 있는 작업이었습니다. 퀘이 형제가 제 관절뼈대를 알게 된 것은 2004년 멕시코 여행에서 들른 스튜디오에서였습니다. 그렇게 인연이 맺어져 올해로 13년째 퀘이 형제의 프로젝트에 금속관절뼈대 전문가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퀘이 형제와 함께하는 작업에는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상업 프로젝트와는 많이 다른 무게감을 느낄 수 있죠. 이런 묵직한 무게감 덕에 언제나 열정을 가지고 작업을 합니다. 물론 일을 하다보면 지칠 때도 있지만, 그들의 창조적인 프로젝트에 신선한 자극을 받고, 제 뼈대 작업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으로 고민하게 됩니다.

위의 광고 영상에서 살짝 보이는 관절뼈대의 손 부분도 퀘이 형제의 프로젝트에서 자극을 받아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물입니다. 이 뼈대의 손을 만들면서 제가 가진 제작 리소스와 노하우를 모두 쏟아부었습니다. 이번 퀘이 형제 프로젝트를 통해 만든 관절뼈대 결과물 가운데 미적 기준에서나 완성도면에서나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 바로 이 손입니다. 퀘이 형제도 손 뼈대를 정말 만족스러워하더군요. 그들이 이번에 내놓는 스톱모션 작품에서는 제가 만든 손 뼈대가 고스란히 노출된다고 합니다. 나중에 퀘이 형제의 스톱모션이 개봉되면 그 때 거기에 사용된 뼈대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Recent Works (April 2017)

작년 겨울부터 지금까지 저는 TV 시리즈 제작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위 사진은 바로 이 프로젝트에 사용될 금속관절뼈대의 바디 부분입니다. 딱 보기에도 손톱만큼 작은 크기입니다. 사실 제가 뼈대 제작을 시작한 17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사이즈는 제작할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저렇게 작은 부품을 완성해서 손바닥에 올려놓고 보고 있으면 헛웃음이 납니다. 이런 부품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기계의 크기에 비해 결과물이 너무나도 작기 때문입니다. 제가 사용하는 기계들 중에는 높이 2.5m, 길이 3.5m에 달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왜 이렇게 작은 부품을 만들고 있는 걸까요? 그건 바로 이 부품이 메인 캐릭터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렇게 작은 캐릭터에는 와이어 뼈대를 사용할 때가 많은데요. 이 캐릭터는 주요 등장인물 가운데 하나인데다 움직임이 많습니다. 그래서 스튜디오에서 와이어 뼈대보다는 내구성이 더 강한 금속관절뼈대를 쓰겠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죠.

일반인들은 작은 게 더 만들기 쉽지 않나 하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관절뼈대 제작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관절뼈대의 기본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모든 관절의 압이 정확하게 볼트로 조절되어야 하며, 애니메이팅 중에도 나사 부분은 최대한 풀리지 않아야 합니다. 별 게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수십만 번의 움직임을 가정하고 뼈대를 만들어야 하는 제게는 꼭 해결해야 하는 과제입니다.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크기의 관절에 대한 노하우를 축적하는 데에만 최소 5년 이상의 시간을 들여야 했습니다.

이렇게 작은 금속관절은 뼈대의 기본 기능을 구현하려면 정밀하게 가공해야 하는데, 이게 또 정말 어려운 작업입니다. 가공할 수 있는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지요. 1mm도 채 안 되는 공간에서 정밀 가공을 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다행히 한달 넘게 작업을 하면서 몇 년 전 만든 관절보다 더 균형 잡힌 소형 사이즈 관절을 만들었습니다. 이번에 제가 만든 작은 금속관절뼈대들은 이제 곧 인형으로 완성되어 무대에 데뷔할 예정입니다.

 

Winkle Bear’s new episode

Tuba Entertainment has released a new episode of Winkle Bear series. Its stop-motion animation work was produced by Comma Studio in South Korea. Comma is currently working on this series, planning to complete three more episodes this y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