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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이 13년간의 방송을 이제 마무리 했습니다. 오랜 팬으로서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종방을 계기로 제가 참여했던 무한도전 클레이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추억해 봅니다. 다음 글은 제가 스톱모션 코리아가 커뮤니티였던 시절, 김준문 감독과 함께 만든 인터뷰 형식의 제작기 입니다.

리나라 스톱모션 업계에서 김준문 감독(쇼타임스튜디오)은 소위 잘 나가는 감독입니다. 친화력 있는 성격도 한몫하지만 김준문표 스톱모션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스타일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감독의 디자인 감성으로 빚어낸 캐리커쳐 캐릭터와 강약고저의 음악을 듣는 듯한 애니메이팅을 보고 있자면, 누구나 김준문 감독은 명확한 색깔을 지닌 작가라는 점을 인정하게 됩니다.

‘무한도전 애니메이션’은 김준문 감독의 원맨밴드같은 제작능력을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이 인터뷰의 취지는 그의 감성과 능력이 빛나는 ‘무한도전 애니메이션’ 제작의 비밀을 기록해 보는 것입니다. 이는 제작 기술을 공유한다는 스톱모션코리아의 취지이기도 하구요.

studio

 

Q. MBC ‘무한도전 애니메이션’의 편수와 러닝타임 그리고 제작기간은 어느 정도 걸렸나요?

A. 총 3편으로, 1편은 4분 30초, 2편은 4분, 3편은 6분30초로 제작했습니다. 캐릭터 제작기간은 2달, 촬영기간은 각 편당 약 45일, 편집은 각 편당 5일 정도로 진행됐으며, 소품 제작기간을 합하면 약 8개월 동안 작업을 하였습니다. 스튜디오에서 나와 처음으로 혼자 작업을 하는 작업이었고, 당시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프로였기에 정말 제대로 잘 하고 싶었습니다.

 

Q. <무한도전>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애니메이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점은 무엇입니까?

A. 처음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 전에는 실제의 움직임이 아닌 희극적이고 과장된 움직임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고전영화에서 채플린이나 막스형제가 보여준 우스꽝스럽고 마임적인 움직임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무한도전 출연진들은 그러한 움직임을 하기에 적합한 캐릭터들이었죠. 하지만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것이 아쉬운 부분입니다.

 

Q. 각 캐릭터의 특성에 맞는 애니메이팅을 하는 비결을 말씀해 주세요.

A. 글쎄요. 뭐 특별히 방법적인 부분은 없었고요. 무한도전 영상과 그 외의 출연 영상들을 백 번 정도는 봤을 거예요. 먼저 각 캐릭터의 움직임을 직접 해보고 몸에 익혀 체화시켰습니다. 노홍철의 저질댄스와 박명수의 쪼쪼댄스 등은 수도 없이 췄죠. (목이랑 허리가 나갔습니다.) 아직은 내공이 부족하여 무조건 익히는 방법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의 움직임이 어색하게 보이더라구요.

 

Infinity challenge08

 

Q. 카메라 종류와 렌즈는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초당 몇 프레임으로 촬영했는지 궁금합니다.

A. 카메라는 캐논 5D, 렌즈는 EF24 – 70mm / f2.8 캐논 L렌즈를 사용했으며, 초당 기본 15프레임으로 촬영했습니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는 프레임이 추가되었습니다.

 

Q. 사용한 조명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좋아하는 조명 톤은?

A. 조명은 필름 기어(film gear)의 600W, 300W 제품을 주로 사용하였습니다. 조명은 명암비를 크게 주기보다는 키라이트와 필라이트의 조명비를 적게 주어 중간 톤을 강조하고자 했고, 백라이트와 헤어라이트로 하이라이트를 강조했습니다.

 

Q. 크로마 촬영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려운 점이 없었나요? 크로마 촬영시 주의할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A. 1편을 제외하고는 2, 3편 모두 크로마 촬영을 했습니다. 풀샷으로 배경과 바닥까지 크로마 촬영을 했지요. 배경은 칼라만 잘 선택하면 어느 정도 쉽게 색을 뺄 수 있었으나, 바닥의 경우는 쉽지가 않았습니다. 바닥에 생기는 캐릭터의 어두운 그림자 부분은 일일이 패스(에프터이펙트의 패스)로 잘라 주었습니다. (프로그램은 에프터이펙트의 keylight로 크로마키 작업을 했습니다.) 또한 바닥의 색이 반사되어 캐릭터에 묻어 났는데, 이렇게 구멍이 생기는 부분은 다시 색을 칠해주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제가 프로그램에 익숙하지가 않아 작업이 좀 더 오래 걸렸답니다. 하하.

 

Infinity challenge10

 

Q. 크로마 배경의 재질이 궁금하네요. 페인트인가요? 아니면 천? 무슨 색을 어디서 구입했는지도 말씀해 주세요.

A. 크로마는 그냥 종이를 사용했습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그 당시에는 동대문에 가서 천을 사올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또 많은 양이 필요하지 않아서 그냥 화방에서 전지 크기의 블루와 그린색 종이를 샀습니다.

 

Q. 인형의 재질은 무엇인가요? 그 재질로 전체를 다 만들었나요?

A. 얼굴은 벤 에이큰(Van Aken) 클레이를 사용했고, 머리는 어린이 공작 재료인 아이클레이를 사용했습니다. 몸의 전체적인 형태를 만들 때도 아이클레이를 사용하고 천으로 의상을 제작하여 입혔습니다. 손과 발은 실리콘을 사용했습니다.

 

Q. 벤 에이큰 클레이가 조비(Jovi) 클레이와 달리 유분감이 많아서 우리나라에서는 잘 사용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벤 에이큰은 조비와 비교해서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나요? 그리고 아이클레이는 갈라지지 않나요?

A. 저도 이전 작업에서는 조비 클레이만을 사용했었습니다. 두 제품은 많이 다르더라구요. 먼저 벤 에이큰은 미국 제품이고 조비는 스페인 제품입니다. 해외에서는 애니메이션을 할 때 벤 에이큰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조비는 어린이 공작용으로 사용한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저도 처음으로 밴 에이큰을 사용해 보게 되었습니다.

두 제품은 칼라를 만드는 방법부터 다릅니다. 벤 에이큰은 열에 녹기 때문에 중탕하여 녹인 다음 조색할 수 있으나, 조비는 열에 녹지 않기 때문에 손으로 주물러 조색을 합니다. (물론 벤 에이큰도 주물러 조색할 수 있습니다.) 벤 에이큰은 유분이 많아서인지 조비보다 점성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손가락을 만들어 구부렸다 폈을 때, 또는 입을 다물었다 벌렸을 때 갈라짐이 적습니다.

벤 에이큰은 조비보다 애니메이팅을 하기에 더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벤 에이큰은 점성이 좋아서 손에 잘 묻어납니다. 이는 손으로 표면을 정리할 때 불편할 수도 있죠. 벤 에이큰은 손으로 잘 밀리지 않기 때문에, 손이나 도구(헤라)를 이용해 눌러주거나 밀면서 형태의 면을 만들고 정리합니다. 손맛이라고나 할까, 그런 아날로그적인 느낌을 표현하는 데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조비는 손으로 문지르거나 밀면서 형태를 만들기가 쉬워서 깨끗한 정리가 가능합니다. 그래서 조비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클레이로 만든 애니메이션적 느낌을 강조하고 싶어 벤 에이큰 클레이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분명 개인 차이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모든 재료는 누가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용도와 기능이 달라질 수 있다고 봅니다. 가격 차이가 없으니, 두 제품을 처음 사용하신 분이라면 직접 사용해 보시는 것이 가장 좋겠죠.

아이클레이는 국내에서 제작된 어린이 공작용 점토입니다. 형태를 만들고 자연건조시키면 굳게 됩니다. 어느 정도의 탄성이 있으나, 심하게 휘거나 잡아당기면 갈라지거나 끊어집니다. 이것 또한 직접 사용해 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이클레이는 굳은 후에도 가볍기 때문에, 저는 머리카락을 만드는 데 사용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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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로부터 벤 에이큰, 조비, 아이클레이

 

아래 부분은 오리지널 포스트에 달린 댓글 중에서 운영자의 부가설명, 김준문 감독에게 하는 추가 질문, 그리고 그에 대한 답변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질문자 Stopmo 우찬의 부가설명

김 감독이 명쾌하게 답변을 해주셨군요. 감사합니다. 클레이에 대한 설명을 조금만 덧붙이자면, 벤 에이큰 클레이(http://www.vanaken.com)는 미국 스튜디오에서 주로 사용합니다. 윌빈튼 스튜디오와 현재 라이카 스튜디오의 메인 클레이죠. 중탕으로 녹여서 조색을 할 수 있고 몰드 이용으로 캐릭터 카피를 할 수 있는 등 애니메이션 작업환경에 잘 맞아서 미국 현장 작업자들이 최고의 클레이라고 칭찬하는 제품입니다. 여담이지만 윌빈튼 스튜디오 창고에서는 벤 에이큰 클레이를 포도주처럼 연도별로 숙성보관하며 사용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영국의 아드만이나 코스그로브 홀 같은 스튜디오에서는 허버트 클레이를 사용합니다. 허버트 클레이는 플라스티신 클레이의 원조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클레이는 몇 년 전 제조회사 CEO의 사망으로 생산을 중단했다가 현재 다시 사업을 재개했다고 합니다. 워낙 유럽 쪽 프로들의 지지를 많이 받아서 재생산에 들어갔다고 들었습니다. 현재는 허버트 클레이가 뉴 클레이로 상표를 바꿨습니다. (http://www.newclay.co.uk)

그리고 아드만과 윌빈튼 스튜디오의 경우에는 위에서 언급한 클레이에 자신들의 경험으로 찾은 다른 물질들을 첨가하여 스튜디오 제작환경에 맞는 특수한 클레이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클레이의 사용 시 느껴지는 유분감을 싫어하는 분들이 많은데, 제가 알기로 그 유분은 식물성 기름입니다. 물론 유명 제품일 경우에 말입니다. 유분감에 대해서는 촬영 시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크게 거부감을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단, 일부 저가제품의 경우 환경호르몬이 검출된 사례가 있기에 어떤 클레이든 사용 후에 손을 씻는 버릇을 들이는 게 좋습니다.

 

Q. 치아의 재질은 무엇인가요? 치아가 보이고 안 보이고 하는 립싱크의 기준은 무엇이고, 탈부착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나요?

A. 치아는 애니메이팅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냥 딱딱한 재료로 사용하면 됩니다.저는 흰색 스컬피를 사용했고, 상황에 따라 클레이도 사용했습니다. 애니메이션은 정형화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입 모양의 변형에 따라 클레이로 치아를 만들어 줬습니다. 립싱크의 기본적인 입 모양은 시중에 나와 있는 애니메이션 책을 참고했고, 무한도전 출연진들이 영상에서 직접 보여 주는 입 모양을 기준으로 했습니다.

입 모양은 보통 대사에 담긴 감정을 따라 가는데, 치아가 보이는 지도 이에 따라 결정됩니다. 무엇인가를 강조하거나 기쁘거나 놀랄 때 등등 여러가지 상황이 있겠죠. 이런 상황과 감정을 직접 거울을 보면서 대사의 감정대로 따라해 보세요. 그러면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치아의 탈부착은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윗니는 많이 움직이지 않아 탈부착을 자주 하지는 않지만, 아랫니의 경우는 다르죠. 얼굴의 클레이에 직접 도구(헤라)로 구멍을 내고 치아를 붙인 후, 클레이로 다시 덮어 모양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어쩔 수가 없네요.

 

Q. 박명수가 나오는 장면에서 종이를 펼치는 것과 글씨를 쓰는 건 어떻게 촬영한 건가요?

A. 박명수가 펼치는 종이는 애니메이팅을 해야 했기에, 가정에서 사용하는 일반 호일을 붙였습니다. 일반 호일로도 어느 정도의 움직임이 가능합니다. 종이가 떠 있는 부분은 알루미늄 철사로 고정시켜 지지해 주었습니다. (아래 사진의 종이 오른쪽 부분에 있는 철사 참고) 글씨의 경우에는 프레임 별로 조금씩 쓴 다음, 소품 연필을 다시 해당 위치에 놓고 촬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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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be continued>

 

기아 자동차 광고에 사용되었던 실물 사이즈 손 관절뼈대입니다. 이전 포스트로 잠깐 보여 드렸었죠. 이번엔 테스트 버전과 최종 버전을 공개합니다. 이번 뼈대는 손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엄밀히 이야기하면, 사람처럼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든 휴머노이드 관절입니다. 

광고를 보면 아시겠지만 캐릭터가 손과 사람으로 번갈아 변신하며 여러 가지 액션을 합니다. 그래서 사진상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검지와 중지의 끝단 볼에는 나사산이 나 있습니다. 검지와 중지를 발처럼 세트 바닥에 고정한 다음, 인형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eYCxQnF2UGo

또 다른 특이점은 이 뼈대의 일부 볼 조인트가 힌지 조인트처럼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실제 인간의 손가락은 한 방향으로만 움직입니다. 그래서 스톱모션용 손 뼈대는 일반적으로 동작이 한 방향으로 고정되는 힌지 조인트 방식으로 제작합니다.

하지만 이 기아 자동차 광고에 사용된 뼈대는 움직임의 방향이 비교적 자유로운 볼과 소켓 방식입니다. 이 뼈대가 손의 역할도 하지만 사람 캐릭터로도 자유롭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손의 역할도 해야 하기 때문에 볼 조인트여도 힌지 조인트의 특성을 최대한 가질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김우찬 감독이 제작한 실제 손크기의 뼈대 Armature by Wuchan Kim, Thinking hand Studio

뼈대 제작 난이도가 좀 높은데도 주문 일정이 좀 빡빡했습니다. 지금 보니 한두 가지 디자인을 수정했으면 더 나았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뼈대를 의뢰한 콤마스튜디오는 멋진 스톱모션을 만들었습니다. 

 

2000년대 초 작업한 뼈대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진지함이 미소짓게 하지만, 좋은 관절뼈대를 만들겠다는 사명감이 가득가득 차 있던 시기였죠. 이 버전은 양산형 뼈대에 대한 처음이자 마지막 시도였습니다. 이후에 풀 커스텀 제작자로 변신했죠.

이 당시 버전은 생산된 지 16년이 지났지만 관절뼈대의 높은 정밀도와 완성도로 업계관계자들의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아직도 영미권의 프로페셔널 친구들이 소장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미국의 포틀랜드에서 먼저 판매되기 시작했고, 짧은 시간에 입소문으로 20개국 이상에서 의뢰문의가 올 정도로 인기가 있었습니다. 저에겐 여러 가지 추억과 에피소드를 가진 최애 작업물이기도 합니다.

이 디자인 버전의 뼈대는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거장, 아트 클로키(Art Clokey) 감독의 ‘Davey and Goliath’s Snowboarding Christmas’의 사람형 관절뼈대로 사용되었고, 엔드 크레딧으로 공식적인 참여 기록을 남겼습니다 (우측 사진은 실제 사용된 관절뼈대 중 하나).

Beginning my first work of this year. They are lower legs of 53cm-tall puppets.

새해 첫 작업으로 위 사진에 나오는 다리 관절뼈대(armature)를 만들었습니다. 이 다리는 키가 50cm가 넘는 휴머노이드 관절뼈대의 무릎 아래 부분입니다. 스톱모션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관절뼈대의 평균 키가 20cm인 것을 감안하면, 50cm 이상은 상당한 크기입니다. 주로 규모가 큰 프로젝트에서 사용되는 크기라고 할 수 있죠.

제가 부분적으로 참여했던 <유령신부>에서 사용된 가장 큰 관절뼈대의 키도 50cm 이상이었고, 지난번 퀘이 형제의 프로젝트에서 2개월간 만들었던 여섯 팔을 가진 관절뼈대도 이 사이즈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스튜디오인 콤마의 자체 프로젝트 <보토스>에서도 키가 50cm 정도 되는 관절뼈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50cm가 넘는 대형 뼈대를 사용하는 것은 스튜디오에게는 도전이고 실험입니다. 뼈대의 크기가 커지면 캐릭터 외에 세트와 부가적인 공간도 커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조명과 같은 부가장치도 세분화되어야 하기 때문에 프로젝트에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겠다는 제작자의 결심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스톱모션 스튜디오가 캐릭터의 크기를 키우는 데 주저합니다. 좀 더 심층적인 설명은 자료 사진이 모이는 데로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와 함께 풀어보겠습니다.

 

세대를 아우르는 마니아층을 보유한 레고(LEGO)나 플레이모빌(Playmobile) 같은 피규어들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오브제로 자주 사용된 바 있습니다. 최근에는 스톱모션 스타일의 CG영화 <레고 무비(The LEGO Movie, 2014)>가 개봉되어 그 사그라들지 않는 인기를 다시 한 번 과시하기도 했지요.

우리나라에서도 2014년 11월 플레이모빌을 이용한 진에어 광고가 런칭되었습니다. 1차 광고인 ‘후쿠오카’편의 뒤를 이어 12월에는 2차로 ‘코타키나발루’편이 나왔구요. 이 두 편의 광고는 친근한 피규어들의 신나고 경쾌한 리듬감을 볼 수 있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입니다. 애니메이팅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스톱모션용 인형이 아닌, 움직임에 제약이 있는 피규어를 그대로 사용한 탓에 애니메이팅에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 광고 컨셉에 맞는 흥겨운 분위기와 움직임이 멋지게 표현된 광고입니다.

이 광고를 제작한 사람은 ‘쇼타임 스튜디오‘의 김준문 감독입니다. 이미 업계에서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캐리커처 디자인부터 제작까지 모든 과정을 혼자 소화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 감독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김준문 감독의 대표작인 무한도전의 클레이 애니메이션과 메리츠 화재의 퍼펫 애니메이션 광고는 다들 한 번쯤 접해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작년 12월에는 국내에서 제작한 스톱모션 광고가 미디어에 유달리 자주 노출되었습니다. 최소 네 편이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는데요. 확인해본 결과, 모두 쇼타임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광고였습니다. 이렇게 많은 수의 광고가 동시다발적으로 방영된 점, 그리고 그 모든 광고를 특정 스튜디오에서 전부 만들었다는 점은 스톱모션 업계에서 그리 흔한 일이 아닙니다.김준문 감독은 한 달에 최소 두 편 정도의 광고 제작에 참여한다고 합니다. 많게는 한 달에 네 편이나 되는 광고에 참여한다고 하니 준비와 촬영기간이 짧은 광고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가히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더군요.

 

김준문 감독

 

감독의 쇼타임 스튜디오를 생각하면 클레이 애니메이션이 자연스럽게 먼저 떠오릅니다.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거장 윌 빈튼도 극찬한 김준문표 캐리커처 캐릭터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쇼타임 스튜디오의 포트폴리오를 찬찬히 살펴보면 최근 몇 년간은 스톱모션의 다양한 세부 장르에 도전하고 실험하는 시기였고 지금은 10여년이 넘은 그의 치열했던 경력에서 나온 솜씨가 완숙기에 접어들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김준문 감독은 컷아웃, 픽실레이션, 페이퍼, 피규어, 의류, 가방 등 거의 모든 오브제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광고를 만들고 있습니다. 오히려 다루지 않은 오브제를 찾는 게 더 빠를 정도죠. 지상파나 케이블, 그리고 인터넷에서 봤던 다양한 스톱모션 광고들 중 열에 아홉은 김준문 감독의 쇼타임 스튜디오에서 만든 거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KT, SK텔레콤 등의 통신사 광고에서부터 다음, 코카콜라 같은 대기업 광고, 그리고 유아용 장난감 광고까지 말이지요.

우리나라에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이용한 광고나 홍보영상 제작에 참여할 경우, 손이 여간 빠르지 않은 애니메이터가 아니고서는 광고주와 광고 프로덕션을 만족시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제작기간이 매우 짧거나 애니메이터가 광고 촬영장에 당일 투입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어느 프로덕션이 알음알음 고용한 애니메이터의 서투른 실력 때문에 촬영 당일 광고주 앞에서 낭패를 봤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김준문 감독이 제작한 무한도전 스톱모션에 사용된 캐릭터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제작을 실제 담당하는 사람이 어떤 작업을 얼마나 많이 했느냐, 즉 다시 말해 ‘경험’이 중요한 건 광고 촬영현장에서 자주 발생하는 돌발상황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노하우와 순발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알기로 광고 촬영시 혼자 인형과 세트를 수정하며 애니메이팅까지 할 수 있는 경험 많은 감독급 인력은 두어 명에 불과합니다. 김준문 감독은 광고 프로덕션과 여러 작업을 함께 하며 쌓은 신뢰를 통해 지금처럼 많은 작품을 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실 스톱모션 스튜디오 입장에서 세트와 퍼펫을 이용한 스톱모션은 오브제를 이용한 스톱모션보다 시간과 노동력의 측면에서 더 큰 부담이 되는 게 사실입니다.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퍼펫 애니메이션을 이용한 광고와 홍보물의 단가가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해 저평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쇼타임 스튜디오의 포트폴리오를 보고 있자면 김 감독이 효율적인 스튜디오 운영에 대해 고심한 흔적들을 조금이나마 읽을 수 있습니다. 김 감독은 우리나라에서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자타공인 최고 실력자이면서도 본인의 주특기 장르만이 아니라 스톱모션 세부 장르로까지 영역을 확장하는 현실적인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환영할 만한 건 우리나라에도 여러 가지 오브제를 사용해 스톱모션의 다양한 모습을 일반인에게 보여주는 쇼타임과 같은 스튜디오가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스톱모션하면 퍼펫이나 클레이애니메이션이 전부라고 알고 있는 일반적인 선입견을 깨고 있다는 말이죠. 이거야말로 진정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대중화’가 아닌가 합니다.

 

콤마스튜디오의 양종표 대표

 

톱모션 스튜디오의 운영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김준문 감독의 ‘쇼타임 스튜디오’는 광고시장의 다변화된 니즈에 빠르게 적응하면서 한사람의 천재성을 기반으로한 감독 중심의 스튜디오 형태를 정착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스톱모션의 확장성에 초점을 맞추면서 상업 스튜디오의 생존방법을 모색하고 있기도 하지요. 반면, 앞서 다른 포스트에서 다룬 적이 있는 양종표, 이희영 두 감독의 ‘콤마 스튜디오’의 경우에는 척박한 한국 스톱모션 환경에서 유기적인 팀 작업을 위한 전문가 스텝 시스템을 꾸준히 실험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두 스튜디오는 지속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면서 한국적 스튜디오 시스템을 연구하는 것만이 살아남는 방법이라는 선례를 한국 스톱모션 역사에 남기고 있습니다. 저는 전설의 사업가 감독들이 자신들의 스튜디오가 스톱모션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는 등의 번지르르한 사탕발림으로 젊은 스텝들을 선동했야만 했던 시절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지저분한 흔적만 남기고 사라져버린 지금 이 순간, 더 명확해진 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우리 스톱모션 역사가 꾸준히 활동하는 작업자의 몫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도 촬영을 하고 있을 쇼타임 스튜디오의 김준문 감독 같은 대중예술 작업자들 말입니다. 2015년 새해에는 좋은 작업자라고 불릴 만한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한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번 암웨이 기업광고는 오랜만에 보는 신토불이(^-^) 풀 스톱모션 광고입니다.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만한 극강 비주얼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광고에서는 크기의 왜곡이 없는 라이프 사이즈의 세트가 사용됐는데요. 광고에 나오는 서랍 안 모형 및 풍경의 크기는 작아서 애니메이팅하기 적당한 사이즈가 아니라는 걸 아실 겁니다.

여기에서는 서랍이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작은 크기의 인형들로 속칭 ‘떼샷’이라고 불리는 그룹 애니메이팅이 능수능란하게 이뤄지는, 꽤 난이도가 높은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농사짓는 모습의 트랙킹샷이 나오는 초반부와 낙하산이 떨어지면서 낮과 밤이 바뀌는 빌딩숲을 촬영한 마지막 부분은 이 광고의 백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감탄사가 절로 나왔던 멋진 장면들입니다.

이 광고를 만든 콤마스튜디오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흥미로운 회사입니다. 콤마는 제작으로 벌어들인 수익을 가지고 자력으로 300여 평의 스튜디오 공간을 마련했고, 작업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모션 컨트롤러와 같은 고가의 제작 장비에 아낌없는 투자를 해왔습니다. 이 암웨이 광고에서 볼 수 있는 부드러운 화면 이동은 보유한 두 대의 모션 컨트롤러를 사용한 결과물입니다.

또한 콤마는 10년 넘게 꾸준히 장편 및 시리즈 프로젝트를 담당해온 파트별 스텝들을 보유하고 있어 장편까지도 별 무리없이 소화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다소 한국적 풍토에서는 희귀한(?!) 스톱모션 전문 스튜디오입니다. 이 스튜디오는 출발점 자체가 장편과 시리즈물 제작이었기 때문에 제작능력과 작업의 질적인 면에서 여타 스튜디오들과는 확연하게 차별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타 애니메이션보다 스텝 개개인의 기여도가 높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에서는 다양한 프로젝트에서의 경험을 통해 세월로 다음어진, 숙련된 인적자원을 보유하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번 암웨이 광고에서 콤마의 다져진 팀워크를 엿볼 수 있다고 봅니다. 게다가 몇 주 안되는 짧은 시간에 세트 제작부터 촬영까지 마쳤다고 하니 콤마의 제작능력에 다시금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나라의 작업 환경에서 상업 스튜디오의 스텝으로 한 회사에서 오랜 기간 동안 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스튜디오조차 살아남기 힘든 작은 시장 규모가 그 주된 이유이긴 하지만, 스텝들의 고혈을 짜냈다는 입소문이 전해지는, 이름만 번드르르한 사업가 사장님들도 여기에 한몫했습니다. 이제는 결과적으로 실력 좋은 스텝들은 이미 업계를 떠났고, 그나마 남아 있는 인력 또한 미래를 고민해야 하는 입장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의 업계라 부르기 창피할 정도로 몇 곳 안되는 스튜디오들은 인력난이라는 악순환을 겪게 된지 오래입니다.

이렇게 상업 스튜디오가 살아남기 힘든 현실에서도 수익성과 제작의 질이라는 두 화두를 안고 끊임없이 고민하는 콤마스튜디오의 열정에 오랜 시간 업계에서 동고동락한 동료로서 큰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스톱모션 역사가 비교적 짧은 국내에도 해외의 웬만한 스튜디오를 능가하는 콤마와 같은 규모의 스튜디오가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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