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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S COUNTER BORING!

카운터 보링(counter boring)은 나사의 머리를 가공면 안으로 넣을 수 있도록 구멍을 파는 자리파기 가공을 말합니다. 이렇게 하면 나사의 머리가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죠. 이 명칭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데, 사실 고도의 복잡한 가공은 아닙니다. 그냥 필요에 맞게 사용하는 일반적인 가공 방식이죠. 제 뼈대에서는 부품에 따라 꼭 필요한 자리에 카운터 보링이 적용되어 있습니다.

위 사진은 초소형 뼈대에 들어가는 관절의 부품입니다. 관절 부분을 최대한 얇게 만들기 위해 카운터 보링으로 가공했죠. 우리 쪽 동네에서는 이렇게 작은 면적과 두께를 가진 부품에 카운터 보링을 해야지 기계 좀 만진다 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일전에 페이스북 댓글에서 유럽에 있는 어떤 분이 관절뼈대의 수준을 가늠하는 기준으로 카운터 보링을 언급했는데요. 그 댓글을 읽고 어이가 없었습니다. 엄청나게 복잡한 가공 방식도 아닌데 뭔가 굉장히 대단한 것처럼 얘기를 하니까요. 제게는 그저 필요에 맞게 사용하는 평범한 가공 방식일 뿐입니다.

올해 제 작업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네요. 극단적으로 다른 크기의 관절뼈대를 번갈아 가면서 작업하고 있으니까요. 지난달에는 10cm도 안 되는 키에 얇은 팔 다리를 가진 소형 캐릭터의 뼈대 작업을, 지난주에는 키가 50cm인 대형 캐릭터의 뼈대 작업을 끝냈습니다. 이번에는 다시 키가 6cm 정도 되는 초소형 캐릭터의 뼈대 작업을 위해 기계를 세팅하며 작업하고 있죠. 위 사진은 그 뼈대의 부품입니다.

스톱모션 작가가 상상력을 구현할 수 있도록 뼈대를 통해 움직임을 만드는 것이 관절뼈대 제작자로서의 제 역할인데요. 하지만 일반적인 공장 시스템의 관점에서 보면 뼈대 제작은 극악의 비효율성을 자랑합니다. 수억이 넘는 고가의 기계를 여러 대 사용하는 데다 세밀한 수작업 가공 공정까지 들어가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현존하는 기술과 엔지니어링의 한계를 뛰어넘는 작가의 상상력까지 더해지는 작업의 경우에는 난이도도 급상승하게 됩니다. 일반적인 크기와는 다른, 초소형 뼈대나 대형 뼈대를 만들려면 한정된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연구와 테스트를 진행해 새로운 솔루션을 찾아내야 하죠. 20년이라는 관절뼈대 제작 경력을 갖고도 그리 쉽지만은 않은 일입니다.

위 사진은 현재 참여 중인 TV 시리즈 시즌 2에 나오는 한 메인 캐릭터의 발입니다. 키가 50cm나 되는 큰 캐릭터인데, 이러한 대형 뼈대도 초소형 뼈대만큼이나 작업이 까다롭죠. 시즌 1 프로젝트에서도 똑같은 캐릭터의 뼈대를 제작한 바 있지만, 한 번 해본 작업이라고 해서 더 쉬워지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이전 뼈대와의 동일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더 골치가 아프죠. 수작업이 굉장히 많이 필요한 작업이거든요.

시즌 1 프로젝트 작업에서는 이 캐릭터와 다른 캐릭터 간에 상체 부품을 공유할 수 있도록 가슴 쪽부터 만들었습니다. 캐릭터들이 비슷비슷한 크기이면 가능한 일이죠. 그러나 이번 시즌 2 프로젝트에서는 뼈대 작업 의뢰를 받은 캐릭터들 사이에 크기 차이가 너무 커서 공유할 수 있는 부품이 아예 없습니다. 그래서 맨 밑부분부터 차근차근 만들어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에 들어가기 전에는 김진만 감독의 작품에 들어갈 주인공 뼈대 작업을 마쳤습니다. 한국 인디 스톱모션계의 대표 작가인 김 감독과는 두 번째 작업이었죠. 난이도가 높은 아이 캐릭터의 관절뼈대라 제작 기간만 3주나 걸릴 정도였습니다. 그 작업도 쉽지 않았는데 이번에도 정말 만만치 않네요. 연휴가 막 끝나서인지 작업 속도도 느립니다. 하루 동안 작업한 양이 저 정도니까요. 내일은 속도를 더 올려야겠습니다.

Last March, I made armatures for a Korean cosmetics commercial linked. At the time, I received this urgent order from Comma Studio. The schedule was quite tight, so I had to rush to set up all the machines and make those armatures. It feels great now to see the commercial on air in various media.

링크된 광고에는 지난 3월에 작업한 뼈대가 사용되었습니다. 당시 콤마 스튜디오가 아래 광고 프로젝트 때문에 급하게 작업을 요청했었죠. 정신없이 기계를 세팅하고 뼈대를 작업했는데, 이번 달부터 여러 매체에서 그 결과물을 볼 수 있어 뿌듯하네요.

This is the final version of my armature created last year for “Dancing Frog”, a Korean stop-motion short by Jinman Kim. Director Kim is currently making another animated short titled “A Cursed Boy” this year. I completed making a new armature yesterday for this whole new film. I’m going to share this thin, tiny armature work once the film gets released later this year.

김진만 감독의 새로운 단편 <저주 소년(가칭)>에 사용될 관절뼈대 작업을 이제 막 끝냈습니다. 김 감독은 한국 독립 스톱모션을 대표하는 작가로, 대표작인 <소이연과 <오목어>로 국내외 유명 영화제에서 수상한 바 있는데요. 이번에는 어떤 멋진 작품이 나올지 기대가 됩니다. 위 사진은 지난해 공개된 김 감독의 <춤추는 개구리>에 들어간 관절뼈대의 최종 버전입니다.

https://youtu.be/bLPY-IU56tc?si=c3eJ3L2Lc-KAoOUi

작은 뼈대에 삽입 될 볼부품 만들기

#관절뼈대, #스톱모션애니메이션, #뼈대부품, #휴가가필요해, #stopmotion #armature, #이렇게까지할일인지

작년 가을쯤 제가 뼈대를 제작했던 신협 ‘어부바 캐릭터편’ 광고가 요새 공중파에서 방송되고 있습니다. 귀여운 돼지 캐릭터와 광고의 따뜻한 톤이 잘 어우러진 스톱모션 광고죠. 국내에서 이 정도로 완성도가 빼어난 퍼펫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수 있는 곳은 콤마 스튜디오(이하 콤마)뿐입니다.

몇 달 전 참여한 한율 화장품 광고와 이번에 나온 신협 광고를 통해 콤마가 이제껏 지향해온 스톱모션 스타일를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는데요. 스튜디오 공동 대표인 이희영 감독과 양종표 감독이 창업 초기부터 공들여 왔던 콤마만의 스톱모션이 한껏 물오른 듯 합니다.

콤마가 만든 스톱모션의 중심에는 캐릭터의 절제된 움직임이 있습니다. 미국 스튜디오처럼 과하지 않고 영국 스튜디오처럼 번잡스럽지도 않습니다. 감성적인 화면 구성에,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은 퍼펫의 움직임을 보다 보면 저절로 스토리에 빠져들게 됩니다.

오래 전 국내 스톱모션 업계에서는 클레이 애니메이션이 한창 유행했었죠. 당시 대다수의 스튜디오들이 스톱모션 콘텐츠에서 파생된 2차 상품이라는 덫에 걸려 주객전도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스토리나 캐릭터의 움직임 등 정작 중요한 작품 자체의 완성도에 주력하기보다 겉으로 드러나는 외형에 치중하는 경우가 많았죠. 과한 캐릭터와 세트, 과도한 컬러로 화면 안을 강박적으로 꽉꽉 채우려고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야 상품성이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 시절에 비하면 현재 콤마의 작업은 심플해 보인다고 할 수 있죠. 그런데도 영상을 통해 전하는 감성과 스토리의 힘은 그 당시보다 훨씬 강력합니다. 여백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프레임 속에서 캐릭터의 움직임을 더 돋보이게 만들고 있거든요. 이게 심플해 보여도 결코 심플한 작업이 아닙니다. 관객의 몰입을 지속적으로 유도하는 건 제작 현장에서 왠만한 내공을 쌓지 않고서는 정말 하기 어려운 일이거든요.

콤마는 국내 스톱모션 생태계에서 아주 드문 형태의 스튜디오입니다. 상업 스튜디오임에도 불구하고 무모할 정도로 독자적인 스타일과 제작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거든요. 그런 열정과 용기 덕에 콤마의 작업 완성도는 세계적인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하지만 스톱모션의 가치가 평가절하된 국내 시장에서 그만한 완성도를 꾸준히 유지하는 건 사실 쉽지 않은 일이죠. 그래서 늘 걱정 어린 마음으로 콤마의 행보를 지켜보게 됩니다.

한국 스톱모션 분야는 여러 이유로 인해 업계라고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그 규모가 축소되었습니다. 이런 척박한 상황에서 콤마는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스톱모션 스튜디오의 독자 생존을 실험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결과에 따라 한국 토종 스톱모션의 미래를 예견해 볼 수 있을지 모릅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든 콤마의 노력이 한국 스톱모션의 미래에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은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얼마 전에 아마존에서 주문한 “Gumby Imagined” 책을 받았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이 책을 대충 훑어보다가 뜻밖의 발견을 했답니다. 스튜디오의 스텝 명단에 제 이름이 들어가 있었던 거죠! 프로젝트에 스텝으로 참여하긴 했지만, 책에도 제 이름이 나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거든요. 활자로 인쇄된 제 이름을 보니 영상의 엔딩 크레딧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트 클로키 프로덕션은 1960년대 미국에서 스톱모션으로 만든 TV 시리즈 “Davey and Goliath”로 큰 인기를 얻은 바 있는데요. 2000년대 초반에 이 시리즈를 토대로 장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죠. 당시 저는 이 장편에 나오는 인간 캐릭터의 관절뼈대를 전담했습니다. 이때만 해도 아시아 출신의 관절뼈대 제작자가 미국 장편 스톱모션에 참여하는 건 전례가 없는 일이었어요. 이런 이유로 이 프로젝트는 제게는 뚜렷이 기억에 남는 작업이 되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막바지에는 작업에 참여한 전체 스텝의 사진이 언론에 공개된 적이 있는데요. 저는 지금처럼 한국에서 작업하고 있던 지라 그 사진을 함께 찍지는 못 했죠. 그런데 아트 클로키 프로덕션은 이때도 사진 캡션에 일부러 제 이름을 넣어 주었습니다. 저는 미처 생각치 못했던 부분이었는데 신경 써주니 고맙더라구요. 이러한 이름 기재 여부는 일면 사소한 문제인듯 보이지만, 스텝의 입장에서는 그 의미가 굉장히 크죠. 해당 프로젝트에 참여한 동료이자 담당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을 받는다는 거니까요.

2000년대 초반은 한국에서 관절뼈대 제작을 단순한 제조업 정도로 취급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관절뼈대는 사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가 성립하기 위한 핵심 요소인데요. 당시 한국의 스톱모션 업계에서는 관절뼈대 제작을 하나의 전문 분야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아니었죠. 그저 청계천 철공소에 하청을 맡기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사람이 만든 관절뼈대는 그 한계가 명확했습니다. 게다가 금속 가공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이 캐릭터 그림에 고작 관절 몇 개 그려넣고 뼈대를 디자인하고 제작했다고 말하는 것도 참 기가 막혔죠. 대충 찍어낸 부품으로 대량 생산한 기성품 뼈대를 주문제작 뼈대라고 주장하는 것도 어이가 없었습니다. 제가 만드는 주문제작 뼈대는 각각의 캐릭터에 맞는 맞춤 부품을 기계로 하나하나 직접 깎아서 만듭니다.

이렇게 관절뼈대 제작자에 대한 개념조차 제대로 서 있지 않았던 한국 상황에서 해외의 유명 스튜디오에게 전문성을 보유한 동등한 작업자로 인정을 받으니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이 프로젝트가 마무리되고 난 후에는 스텝으로 참여했던 한 애니메이터에게 좋은 관절뼈대를 사용하게 해줘서 감사하다는 메일도 받았었죠. 프로젝트에 참여한지 15년도 넘은 지금, 이 책을 들춰보다 제 이름을 발견하게 되니 다시금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르네요.

아트 클로키와 조 클로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네요. 두 분 모두 부디 좋은 곳에서 편히 쉬시길…

제가 최근에 참여한 화장품 광고입니다.

스톱모션은 전통적으로 동화적인 감성과 잘 어울립니다. 특히 천 질감을 사용하면 따스함의 표현이 더욱 두드러지는 듯합니다. 동유럽과 일본의 스톱모션이 그러했고, 최근 들어 펠트천 인형의 작품을 봐도 그렇습니다.

퍼펫애니메이션에 강한  <콤마스튜디오>가 이번 화장품 광고에서 스톱모션이 가진 동화적인 감성을 잘 증폭시켰습니다. 1분 정도(?!)의 광고이지만 세트의 크기에서 애니메이팅 표현까지 한국 최대의 스톱모션 스튜디오 <콤마>의 저력을 보여주는 광고 한편입니다.

김우찬 관절뼈대 콤마스튜디오 thinking h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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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스튜디오에서 의뢰받은 얼굴 움직임을 위한 부분 뼈대 사진입니다. 프로토타입 제작 과정 중 두 번째 버전이구요. 보통 제작 과정은 미완성 상태라 거의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타인에게 제 고민의 흔적을 보여주는 것이 익숙지 않아서 말이죠.

모든 최종본은 프로토타입 단계를 거치고, 다시 기계적인 해석을 통해 마무리합니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완성본의 깔끔함과는 다르게 그 이면의 과정은 거칠고 투박합니다. 위 사진의 버전 이후 다섯 가지 프로토타입을 더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수공과 기공을 사용해 힘들게 여러 가지 테스트 버전을 만드는 이유가 있습니다. 스톱모션 뼈대 제작에 있어 이 과정은 캐릭터의 움직임을 분석하고, 움직임의 특성에 맞게 기술적인 해석을 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