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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새해가 시작된지 한참 지났는데, 이제서야 올해 첫 글을 올립니다. 그동안 여러 일이 많아 좀 바빴거든요. 늦게나마 지난해 끝자락에 작업했던 광고 두 편을 공유합니다. 그런데 이 시국에 여행 관련 내용을 올리려니 약간 민망하네요.

이번 작업은 콤마스튜디오에서 만든 ‘익스피디아’ 광고로, 2019년 12월에 방송된 밝은 톤의 깔끔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두 편입니다. 러닝타임이 한 편당 15초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 좀 아쉬운 광고죠. 퍼펫의 움직임, 세트의 규모와 디테일 등 들여다볼 만한 부분이 많은데도 말입니다.

이번 뼈대 제작을 의뢰받았을 당시 이 광고 두 편의 총 제작 기간이 한 달 정도밖에 주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듣고 정말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이 정도 분량의 광고는 총 제작 기간이 보통 두 달 정도는 걸릴 때가 많았거든요. 하지만 이번에는 빡빡한 일정으로 인해 뼈대 제작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굉장히 적었습니다. 게다가 뼈대 제작 난이도까지 꽤 높았어요. 하지만 이러한 제약에도 불구하고 완성도 높은 뼈대를 기한에 맞춰 콤마스튜디오에 보낼 수 있었습니다. 작년에 만든 뼈대 중 가장 만족스러운 작품이었죠.

추후에 콤마스튜디오에서 광고 완성본을 받아보았는데,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귀여운 스톱모션이 나왔더군요. 콘티상으로 개별 세트가 10개 정도 필요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한 달 안에 그 세트를 모두 완성해 광고 안에 담은 모습을 보니 놀랍기도 하고요. 다만 아쉽게도 광고가 너무 짧아서 일반 시청자가 그런 면을 눈치채기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번 익스피디아 광고는 작년에 제가 진행했던 마지막 작업이기도 하지만, 한결같은 제 징크스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한 해의 첫 작업과 마지막 작업의 난이도는 늘 동일하다는 제 징크스는 20년 가까이 깨지지가 않네요. 올해도 역시 첫 작업이 만만치 않았는데, 남은 한 해는 어떤 작업을 만나게 될지 기대됩니다…ㅋㅋ

 

 

프리메라 화장품의 <페퍼씨의 하루 – 버스 정류장 편> 광고입니다. 올가을 콤마스튜디오에서 제작된 총 3편의 연작 광고 중 하나이죠.

 

콤마스튜디오에서 제작한 프리메라 화장품 광고입니다. 지난달에 공개되었죠. 늘 그렇듯 저는 관절뼈대로 참여했습니다. 이 광고의 첫인상은 참 꼼꼼하게 만들었다는 거예요. 스톱모션의 다양한 세부 기술을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시청자에게는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화면이 실제로는 의도를 가지고 수작업으로 하나씩 만들어낸 장면이죠.

여느 직장에서 볼 법한 사무실의 책상에 무심하게 올려져 있는 파일철의 디테일. 작은 소품일 뿐인 에어컨이 실제로 작동되듯 움직이는 모습. 와이어를 심지 않고도 재미난 움직을 보여주는 종이 인형.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 책상 위로 떨어지는 조명의 차이를 통해 이끌어낸 화면의 깊이감. 퍼펫의 얼굴에 광채 가득한 화사한 피부톤까지.

 

 

이 정도만 봐도 얼마나 꼼꼼하게 광고를 만들었는지 알 수 있죠. 언젠가 얘기했듯 스톱모션 제작에서 이러한 디테일은 바로 자신감의 표현이자 실력의 지표입니다. 특히 상대적으로 제작 기한이 촉박한 광고에서는 더욱 그렇죠. 뒤이어 후속 스톱모션 광고로 도서관 편도 곧 나온다고 하니 기대가 됩니다.

김우찬 감독의 작업 손과 힙부품

위의 사진은 김진만 감독의 신작 단편 <춤추는 개구리 Dancing Frog>에서 주인공 뼈대에 들어가는 힙 부분입니다.

작업하다 보면 가끔 악에 받쳐 완성할 때까지 부품과 씨름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 힙 부분을 만들 때도 정말 진이 빠졌죠. 차라리 좀 더 작은 크기의 볼로 이걸 만들었으면 더 수월했을 테지만, 몇 가지 이유로 사진에 보이는 크기의 볼을 사용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김 감독의 작품을 보니 이런 고생을 한 것도 정말 보람이 있더군요. 이 작품에서 뼈대 제작자의 의도를 뛰어넘는 감독의 애니메이팅 실력에 깜짝 놀랐죠. 실력을 발휘한 김진만 감독님 고생하셨습니다!👏👏

2016년 초봄, 두 가지 다른 버전의 손 관절뼈대를 만들었습니다. 실험적인 스톱모션으로 유명한 퀘이형제 작품에 들어가는 30cm 정도의 휴머노이드 뼈대에 장착될 손이었죠. 위의 이미지는 여러 테스트를 끝내고 마무리될 즈음에 기록으로 남긴 것입니다.

사진 속 연필과 손 관절뼈대와 비교해 보면 대충의 사이즈를 가늠할 수 있을 겁니다. 30cm 키를 가진 관절뼈대에 적당한 비율의 손인지라, 크기가 작을 뿐만 아니라 두께도 1mm도 채 안 되는 부분이 있을 정도로 얇습니다.

뼈대를 제작하다 보면 기계로 가공할 수 있는 한계치에 근접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위 사진 속의 손 관절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게다가 이번 작업은 손의 입체적이고 정교한 움직임을 아주 작은 공간에 집약시키는 게 관건이어서 좀 애를 먹었습니다.

20년 가까이 뼈대를 만들다 보니 퀘이형제를 위한 손 관절뼈대처럼 기억에 남는 뼈대가 꽤 있습니다. 다행히도 이번 작업은 복제본을 만들었지만, 다른 프로젝트에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클라이언트가 주문한 수량에 맞춰 제작한 관절뼈대 최종본은 바로 애니메이션 프로젝트에 실제로 사용됩니다. 스톱모션 작품의 제작 과정에서 초반에 뼈대가 완성되어야 다른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뼈대 작업은 언제나 촉박한 스케줄에 쫓기는 편입니다. 그런데다 제작 시간도 많이 드는 터라 여벌의 복제본을 만들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100편 이상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제가 현재 소장하고 있는 뼈대 복제본의 수는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경력상 큰 의미가 있는 프로젝트의 뼈대 중 일부만 복제본을 만들어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변 지인들이 제게 전시회를 하면 어떨까 하는 제안을 할 때마다 곤혹스러운 마음이 먼저 들었죠. 전시에 필요한 작품 수를 채우기 위해 다시 복제본을 제작할 생각을 하니 너무 막막했거든요.

몇 달 전 지인에게 전시회 얘기를 또 들었습니다. 무관심했던 이전과는 달리 그 가능성에 대해서 고민을 해보았죠. 이제 반백이 넘은 나이가 되면서 제가 이제껏 해 온 작업들을 한번은 정리해 보고 싶다는 욕심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하나 봅니다.

초창기 우찬 모듈 뼈대의 디테일 뷰입니다.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거장 아트 크록키의 프로젝트를 비롯해

많은 해외 작업에 사용된 관절뼈대 형태입니다.

위의 이미지는 워커를 위해 만든 부품 사진입니다.  몇 주간 계속하고 있는 작업이기도 하지만 최근에 금속가공에 관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어서 겸사겸사 이 이미지를 올립니다. 카운트보링은 볼트의 머리가 가공면 위로 돌출되지 않게 하기 위해 홈을 파는 작업을 말합니다.

위 사진의 부품에 보이는 둥근 홈을 파는 가공을 일컫는 기술적인 용어입니다. 해외 어떤 분이 이걸 무슨 대단한 기술처럼 말하더군요. 이 기술이 마치 뼈대의 고급 기종과 저급 기종을 나누는 것처럼 말이죠ㅎㅎ. 정말 말도 안 되는 생각입니다. 카운터 보링은 필요에 따라 사용하는 단순 테크닉입니다.

예전 한 스튜디오에서 만들었던 몇천 원짜리 청계천표 조인트에도 카운트 보링이 나 있습니다. 그게 그리 고급스러운 기술이라면 그 조인트가 볼을 다 갉아 먹고, 압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단순히 어떤 기술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좋은 뼈대와 나쁜 뼈대를 구분 짓지는 않습니다. 사실 이런 구닥다리 선입견은 우리나라에도 있었습니다. 한 20년 전에 말이죠.

카운트 보링은 단순 테크닉인지라 필요할 때 사용하면 됩니다. 인형을 만들다 보면 특정 재질로 인형을 만들거나 피부를 얇게 만들어야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러면 카운트 보링으로 조인트 면의 높이와 볼트 대가리의 높이를 비슷하게 맞추면 인형제작과 내구성에 도움이 됩니다.

개인적으로 뼈대 조인트에 카운트 보링을 넣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 사용하는 뼈대일 경우에는 말이죠. 이것은 저의 경험치이기도 하지만 작업장의 다른 엔지니어들의 공통적인 의견이기도 합니다. 이유는 기회가 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Armature 김우찬 감독의 공구 바이스

위 사진은 바이스라는 공구입니다. 참 오랫동안 사용한 공구인데, 제 기억으로도 한 20년이 넘었죠. 용접이나 열 처리 같이 고열을 가할 때나 산 처리 같이 험한 작업을 할 때 사용하는 막바이스입니다. 그래서인지 바이스 여기저기에서 불에 검게 그을린 자국과 산으로 생긴 녹을 볼 수 있습니다.

원래 바이스는 상단의 바이스면이 평평한데, 위 사진에서는 그 부분에 구멍 몇 개가 나 있습니다. 용접 시에 피용접물을 잡기 위해 바이스면에 홀 가공을 했기 때문이죠. 원래 형태에 비해 많이 너덜너덜해져서 공장 구석에 처박혀 있는 공구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바이스만큼은 제가 어떤 작업을 하든 항상 옆에 끼고 있는 최애 공구입니다.

제가 모든 프로젝트에서 테스트 버전, 즉 프로토타입을 만들 때에는 이 바이스를 사용합니다. 프로토타입에서 중요한 부분은 외양이 아니라 기능(뼈대의 움직임)이기 때문에, 이 바이스로 빠르게 용접과 땜을 하여 여러 가지 버전을 테스트합니다.

제 뼈대는 CNC 기계 가공 덕분에 깔끔한 만듦새를 가지고 있어 종종 클라이언트에게 감탄을 받곤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멋진 최종 버전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하죠. 그 과정은 이 바이스의 모습처럼 우아함과는 완전 거리가 멉니다.

이번 주에도 또 다른 가공을 하기 위해 바이스면에 두 개의 구멍을 냈습니다. 제 경력이 길어지는 만큼 이 바이스에도 훈장 같은 흔적이 늘어나는 것 같네요.

This is the chest part of the armature I made for a stop-motion animation TV series. It’s almost the size of a thumb nail. It seems a bit ridiculous when I think of how little such parts are, compared to the size of the enormous machines I use.

작년 겨울부터 지금까지 TV 시리즈 제작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위 사진은 바로 이 프로젝트에 사용될 금속관절뼈대의 바디 부분입니다. 딱 보기에도 손톱만큼 작은 크기입니다. 사실 제가 뼈대 제작을 시작한 17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사이즈는 제작할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저렇게 작은 부품을 완성해서 손바닥에 올려놓고 보고 있으면 헛웃음이 납니다. 이런 부품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기계의 크기에 비해 결과물이 너무나도 작기 때문입니다. 제가 사용하는 기계들 중에는 높이 2.5m, 길이 3.5m에 달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왜 이렇게 작은 부품을 만들고 있는 걸까요? 그건 바로 이 부품이 메인 캐릭터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렇게 작은 캐릭터에는 와이어 뼈대를 사용할 때가 많은데요. 이 캐릭터는 주요 등장인물 가운데 하나인데다 움직임이 많습니다. 그래서 스튜디오에서 와이어 뼈대보다는 내구성이 더 강한 금속관절뼈대를 쓰겠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죠.

일반인들은 작은 게 더 만들기 쉽지 않나 하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관절뼈대 제작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관절뼈대의 기본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모든 관절의 압이 정확하게 볼트로 조절되어야 하며, 애니메이팅 중에도 나사 부분은 최대한 풀리지 않아야 합니다. 별 게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수십만 번의 움직임을 가정하고 뼈대를 만들어야 하는 제게는 꼭 해결해야 하는 과제입니다.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크기의 관절에 대한 노하우를 축적하는 데에만 최소 5년 이상의 시간을 들여야 했습니다.

이렇게 작은 금속관절은 뼈대의 기본 기능을 구현하려면 정밀하게 가공해야 하는데, 이게 또 정말 어려운 작업입니다. 가공할 수 있는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지요. 1mm도 채 안 되는 공간에서 정밀 가공을 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다행히 한달 넘게 작업을 하면서 몇 년 전 만든 관절보다 더 균형 잡힌 소형 사이즈 관절을 만들었습니다. 이번에 제가 만든 작은 금속관절뼈대들은 이제 곧 인형으로 완성되어 무대에 데뷔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