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 for: 아마추어

 

이번에 콤마스튜디오의 양종표 감독에게 연락을 받았습니다. JYP 소속 보이밴드 데이식스(DAY6)의 ‘Lovin’ the Christmas’ 뮤직비디오가 완성되어 유튜브에 올라왔다는 소식을 들었죠. 평소보다 촉박한 일정으로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예상보다 빨리 완성작이 공개되었네요. 올해 크리스마스를 겨냥한 이번 뮤직비디오에는 귀여운 데니멀즈 캐릭터들이 등장해 데이식스 팬들이 너무나 좋아할 것 같습니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에서는 클레이, 직물, 우레탄, 펠트, 라텍스 등 다양한 소재로 인형을 만듭니다. 이번 뮤비에서 데니멀즈 캐릭터들과 루돌프가 패브릭 소재로 만든 봉제 인형이죠. 콤마스튜디오가 강점을 보이는 소재 중 하나가 바로 패브릭인데요. 콤마 제작진의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애니메이팅은 패브릭 소재가 자아내는 정감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해줍니다. 3D나 AI로는 좀처럼 구현하기 어려운 아날로그적인 감성이죠. 여기에는 조명도 큰 역할을 하고 있는데요. 콤마 제작진은 전반적인 조명의 톤을 낮추고 스폿 조명으로 캐릭터와 동선을 강조했습니다. 덕분에 패브릭 소재의 복슬복슬한 질감과 아늑한 연말 분위기의 톤이 잘 살아납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콤마스튜디오에서 BTS(방탄소년단)의 ‘Yet to Come’ 뮤비 이후로 오랜만에 제작한 뮤직비디오입니다. 스톱모션 감성이 듬뿍 묻어나는 데이식스의 신곡 뮤비와 함께 따뜻하고 포근한 연말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퀘이형제의 장편영화 ‘모래시계 표지판 아래 요양소(Sanatorium Under the Sign of the Hourglass)’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전주로 달려갔습니다. 퀘이형제가 보내 준 링크를 통해 영화 일부를 살짝 먼저 보기는 했지만, 모니터가 아닌 빅스크린으로 보고 싶었습니다.

영화제 개막을 코앞에 두고 전주에 내려갔더니 많은 영화들이 표가 벌써 매진되었더군요. 퀘이형제 작품도 마찬가지였습니다만, 저는 참여작가 찬스로 어찌어찌 겨우 구할 수 있었습니다. 첫 상영 당일 관람석을 꽉 채운 영화관의 모습은 놀라웠습니다. 퀘이형제의 영화는 내용이 난해해 관객의 호불호가 꽤나 강한 편으로 유명한데, 그럼에도 만석이라니 솔직히 예상 밖의 모습이었습니다. 몇 년 전, 퀘이형제의 일본 순회 전시 사인회에서 본 많은 인파의 모습과 오버랩이 되었죠.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나서 여러 생각에 한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진행 측의 아쉬운 실수가 한두 가지 있긴 했지만, 역시 전주에 내려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주국제영화제 관계자 분들, 고맙습니다!) 영화관의 대형 스크린에서 관람하니 작은 모니터에서 놓쳤던 부분들이 세세히 눈에 들어왔고, 강렬한 음악도 인상적인 비주얼과 함께 온몸과 마음에 전해졌습니다.

장장 19년간 지속된 프로젝트. 금속관절뼈대 제작으로 이 작품에 참여했던 제게도 참으로 오랜 시간이었습니다. 퀘이형제와 메일을 주고 받을 때마다 대략 그간의 진행 상황을 들을 수 있었는데, 이 작품은 끝난 줄만 알고 있다 또 다른 뼈대 제작을 의뢰받는 등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은 이상한 프로젝트였습니다.

 

헐리우드의 거장,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만든 퀘이형제 다큐멘터리 ‘Quay’의 한 장면. 세 사람이 ‘Sanatorium Under the Sign of the Hourglass’의 메인 금속관절뼈대를 관찰하고 있다. 2020년 6월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던 ‘퀘이 형제: 도미토리움으로의 초대展’에서도 같은 뼈대를 볼 수 있었다.

 

퀘이형제와 함께 작업한 기간은 제 커리어에 있어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20년 넘게 그들이 사용하는 금속관절뼈대를 만들어 왔으니까요. 멕시코 영화학교에서 제가 만든 뼈대를 우연히 발견한 퀘이형제에게 연락을 받은 것도 기막힌 우연이지만, 우리 세 사람 모두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스톱모션 업계에서 살아남아 꾸준히 작업해 왔다는 것도 정말 믿기지 않는 일입니다.

퀘이형제의 작품에 참여한다는 것은 상업 프로젝트에 익숙한 저에게 항상 도전적인 과제라고 어느 인터뷰에서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들만의 독립적이고 독특한 애니메이션 제작 방식은 속도와 효율을 선호하는 상업 프로젝트와는 여러 면에서 대치됩니다. 그래서 대형 상업 스튜디오의 프로젝트가 주된 일거리인 제가 퀘이형제와 함께 작업을 하려면 비교적 많은 시간을 고민해야 하죠. 그러나 작품에 참여하는 스텝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존중하는 퀘이형제의 스타일 덕분에 매번 작업에서 과감한 디자인의 뼈대가 탄생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제껏 미스테리하게 여겨왔던 퀘이형제의 세 번째 장편이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을 통해 20년 만에 드디어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영국, 독일, 폴란드의 합작 프로젝트인 이 작품에서 저는 공식 크레딧에 유일한 아시아인 스텝으로 이름을 올렸고, 제가 제작한 금속관절뼈대가 영화 안에서 원형 그대로 노출되어 등장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모래시계 표지판 아래 요양소’라는 이 영화는 제가 20년간 퀘이형제의 금속관절뼈대 제작자로 일하며 기울인 노력에 대한 선물처럼 느껴집니다.

퀘이형제의 신작 장편영화의 엔딩크레딧에 김우찬 감독의 이름이 있다.

모래시계 표지판 아래 요양소(Sanatorium Under the Sign of the Hourglass)의 엔딩 크레딧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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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이형제의 이번 장편은 거의 20년에 걸쳐 완성된 작품입니다. 2004년부터 퀘이형제를 위한 관절뼈대 작업을 시작한 이래, 몇 회에 걸쳐 뼈대 제작을 했죠.  퀘이의 이번 작품은 저의 7번째 장편 참여작 입니다. 기존에 참여한 6개의 상업 작품과는 다른 기간과 과정으로 오랫동안 기억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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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이 형제의 팬이라면 위의 사진들은 아주 보기 드문 장면이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할 겁니다. 시대가 바뀌어 그들의 행보가 많이 노출되었지만, 여전히 몽환적인 작품과 더불어 미스테리한 작가로 여겨지더군요. 그들의 찐팬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단편 ‘퀘이'(Quay, 2015)의 내용이 두 쌍둥이 형제의 작업실 스케치였다는 사실이 그리 놀랍지 않습니다.

작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작업한 스톱모션용 관절뼈대를 몇 가지 올려봅니다. 크기가 5cm인 초소형 뼈대부터 무려 60cm나 되는 대형 뼈대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프로젝트 안에서도 서로 다른 크기의 관절뼈대를 만들었죠. 이렇게 뼈대의 사이즈가 바뀌면 조인트에 가해지는 하중과 압력도 달라집니다. 그래서 뼈대별로 들어가는 조인트도 캐릭터에 따라 각기 다르게 디자인했지요.

관절뼈대 작업을 시작했던 초창기에는 몇 가지 공통된 부품만을 사용해 뼈대를 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그 치기 어린 생각이 산산조각 나기까지는 몇 개월도 채 걸리지 않았는데요. 그럼에도 당시엔 뼈대 한 세트를 만들기 위해 거의 매번 새로운 부품을 가공해야 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까지 작업량이 많아질 줄은 몰랐던 거죠.

24년이라는 경력을 갖춘 지금은 뼈대 작업의 속도가 훨씬 빨라졌습니다. 다만 스톱모션 프로젝트에 따라서는 기계 가공의 한계를 시험하는 창의적인 캐릭터를 작업해야 할 때도 있는데요. 그럴 때면 저 또한 고민을 거듭하며 애니메이팅 가능한 뼈대를 만들기 위해 상상력을 한껏 발휘해야 하죠. 작업의 난이도는 시간이 갈수록 이렇게 높아져만 가고, 제가 새벽에 출근하는 날도 점점 늘어가고 있답니다

 

위 사진의 장치는 30센티 정도의 비교적 긴 이동 거리를 가진 워커(aka 리그 혹은 리깅 시스템)입니다.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스톱모션 제작 환경을 고려하면, 이동 거리뿐만 아니라 외형도 많이 큰 편에 속합니다. 이렇게 평균적인 크기를 벗어난 이유 중의 하나는 콤마스튜디오가  다가올 광고 프로젝트에서 70센티나 되는 큰 캐릭터를 애니메이팅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경험 많은 애니메이터이자 제 스승이었던 모 외국인 교수님은 한국에서 처음 본 여러 가지 형태의 워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제작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고안해 낸 도구였기에 빠른 애니메이팅은 보장하였지만, 캐릭터의 무게감 같은 애니메이팅의 세밀한 요소가 무뎌졌죠.  그래서인지 나쁜 애니메이팅 습관들이 워커를 통해 애니메이터의 손에 들러붙는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오래전 그런 쓴소리를 들어왔던 한국형 리그인 ‘워커’가 디지털 시대를 맞이하면서 새롭게 변신하고 있습니다. 아날로그적인 스톱모션 제작에 디지털 테크닉이 도입되면서 ‘워커’는 이제 촬영 시간 단축이라는 본래의 쓰임새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CG 합성과 결합을 통해 심심할 수 있는 스톱모션 표현과 단조로웠던 캐릭터의 동선을 다채롭게 표현하는 보조도구로 거듭나고 있죠. (워커가 무엇인지 궁금하신 분들은 이전 글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링크 : 한국형 리깅 시스템 -워커))

위의 부품은 이번 달 초에 작업한 관절뼈대의 몸통부분입니다. 7명의 캐릭터를 위해 만들었고, 가늘고 얇은 팔이 필요해 3mm 볼조인트를 아주 극단적으로 가공했죠.

정말 정신없이 지나간 열흘동안의 작업이었습니다. 관절뼈대제작이 전체 애니메이션 제작공정의 첫 스타트인지라 짧은 일정을 맞추기위해 미친듯이 일한 것 같네요.

곧 완성된 영상물과 함께 누구를 위한 작업인지 공개하겠습니다.


콤마스튜디오에서 스톱모션으로 제작한 한국 맥도날드 광고입니다.

Client 광고주: 한국 맥도날드 (McDonald’s Korea)

Agency 대행사: 레오 버넷 (Leo Burnett)

Production 프로덕션: 토스트, 웁스필름

Stopmotion & Characters 스톱모션 및 캐릭터 제작: (주)콤마스튜디오 (Comma Studio)

 

스톱모션 제작사는 콤마스튜디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