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 for: 스톱모션

 

<UPDATE> ※ 특별 전시 ‘퀘이 형제: 도미토리움으로의 초대(Welcome to the »Dormitorium«)’ 일정이 코로나19가 다시 확산됨에 따라 불가피하게 연기되었습니다. 2020년 5월 20일(수) – 6월 21일(일)

 

천재지변과도 같은 코로나19 사태로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드디어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가 5월 28일부터 6월 6일까지 열립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에 동참하기 위해 무관객 영화제로 진행되는 점은 아쉽지만, 그래도 온라인 상영으로 다양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고 하네요.

올해 특별 기획전에 초청된 작가는 바로 퀘이 형제인데요. 형제의 작품 25편을 상영하는 스페셜 포커스는 추후 장기 상영회에서 공개된다고 합니다. 5월 15일부터 6월 21일까지는 전주 팔복예술공장에서 특별 전시 ‘퀘이 형제: 도미토리움으로의 초대’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형제의 작품에 들어간 몽환적인 세트와 퍼펫을 관람할 수 있어 기대가 되네요. 그리고 퀘이형제의 신작<The Doll’s Breath (2019)>를 위해 제가 제작한 금속관절뼈대도 전시될 예정입니다.

 

2020년 새해가 시작된지 한참 지났는데, 이제서야 올해 첫 글을 올립니다. 그동안 여러 일이 많아 좀 바빴거든요. 늦게나마 지난해 끝자락에 작업했던 광고 두 편을 공유합니다. 그런데 이 시국에 여행 관련 내용을 올리려니 약간 민망하네요.

이번 작업은 콤마스튜디오에서 만든 ‘익스피디아’ 광고로, 2019년 12월에 방송된 밝은 톤의 깔끔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두 편입니다. 러닝타임이 한 편당 15초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 좀 아쉬운 광고죠. 퍼펫의 움직임, 세트의 규모와 디테일 등 들여다볼 만한 부분이 많은데도 말입니다.

이번 뼈대 제작을 의뢰받았을 당시 이 광고 두 편의 총 제작 기간이 한 달 정도밖에 주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듣고 정말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이 정도 분량의 광고는 총 제작 기간이 보통 두 달 정도는 걸릴 때가 많았거든요. 하지만 이번에는 빡빡한 일정으로 인해 뼈대 제작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굉장히 적었습니다. 게다가 뼈대 제작 난이도까지 꽤 높았어요. 하지만 이러한 제약에도 불구하고 완성도 높은 뼈대를 기한에 맞춰 콤마스튜디오에 보낼 수 있었습니다. 작년에 만든 뼈대 중 가장 만족스러운 작품이었죠.

추후에 콤마스튜디오에서 광고 완성본을 받아보았는데,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귀여운 스톱모션이 나왔더군요. 콘티상으로 개별 세트가 10개 정도 필요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한 달 안에 그 세트를 모두 완성해 광고 안에 담은 모습을 보니 놀랍기도 하고요. 다만 아쉽게도 광고가 너무 짧아서 일반 시청자가 그런 면을 눈치채기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번 익스피디아 광고는 작년에 제가 진행했던 마지막 작업이기도 하지만, 한결같은 제 징크스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한 해의 첫 작업과 마지막 작업의 난이도는 늘 동일하다는 제 징크스는 20년 가까이 깨지지가 않네요. 올해도 역시 첫 작업이 만만치 않았는데, 남은 한 해는 어떤 작업을 만나게 될지 기대됩니다…ㅋㅋ

 

 

프리메라 화장품의 <페퍼씨의 하루 – 버스 정류장 편> 광고입니다. 올가을 콤마스튜디오에서 제작된 총 3편의 연작 광고 중 하나이죠.

 

프리메라 화장품의 <페퍼씨의 하루 – 버스 정류장 편> 광고입니다. 올가을 콤마스튜디오에서 제작된 총 3편의 연작 광고 중 하나이죠.

 

콤마스튜디오에서 제작한 프리메라 화장품 광고입니다. 지난달에 공개되었죠. 늘 그렇듯 저는 관절뼈대로 참여했습니다. 이 광고의 첫인상은 참 꼼꼼하게 만들었다는 거예요. 스톱모션의 다양한 세부 기술을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시청자에게는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화면이 실제로는 의도를 가지고 수작업으로 하나씩 만들어낸 장면이죠.

여느 직장에서 볼 법한 사무실의 책상에 무심하게 올려져 있는 파일철의 디테일. 작은 소품일 뿐인 에어컨이 실제로 작동되듯 움직이는 모습. 와이어를 심지 않고도 재미난 움직을 보여주는 종이 인형.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 책상 위로 떨어지는 조명의 차이를 통해 이끌어낸 화면의 깊이감. 퍼펫의 얼굴에 광채 가득한 화사한 피부톤까지.

 

 

이 정도만 봐도 얼마나 꼼꼼하게 광고를 만들었는지 알 수 있죠. 언젠가 얘기했듯 스톱모션 제작에서 이러한 디테일은 바로 자신감의 표현이자 실력의 지표입니다. 특히 상대적으로 제작 기한이 촉박한 광고에서는 더욱 그렇죠. 뒤이어 후속 스톱모션 광고로 도서관 편도 곧 나온다고 하니 기대가 됩니다.

귀여운 냥이 ‘달자’로 심쿵을 불러일으키는 한율의 달빛유자 두번째 광고가 공개되었습니다. 스톱모션 제작은 콤마스튜디오가, 퍼펫의 관절뼈대 제작은 제가 담당했죠.

첫 번째 달빛유자 광고에서도, 이번 광고에서도 느낄 수 있는 점은 바로 콤마스튜디오의 자신감입니다. 광고 작업은 대개 주어진 시간 안에 빠르게 제작하는 것이 관건인데요. 그래서 스톱모션으로 광고를 만들 때는 일정을 맞추기 위해 큰 동작 위주로 작업하게 됩니다.

그런데 스톱모션 광고에서 이렇게 디테일한 동작까지 세세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자신감이 있다는 거죠. 뛰어난 실력과 현장 컨트롤 능력을 갖췄다는 말이니까요. 퍼펫의 동선부터 미세한 표정의 변화 하나하나까지 잡아내는 표현력. 유튜브 댓글만 봐도 사람들이 ‘달자’에게 얼마나 매력을 느끼는지 알 수 있죠.

 

 

2000년 전후로 우리나라에서 갑작스럽게 스톱모션 붐이 일었던 적이 있습니다. 우후죽순 생겨난 스튜디오들이 각자 국내 최고라는 수식어를 내세우면서도 정작 본연의 실력을 작품으로 제대로 보여준 곳은 거의 없었죠.

그런데 콤마스튜디오의 최근 작업을 보면 이제 한국에도 제대로 된 제작 시스템과 마인드를 갖춘 스톱모션 스튜디오가 생긴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장편과 TV 시리즈 제작을 통해 다져진 탄탄한 실력이 일관된 제작 시스템 안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콤마만의 색깔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작년 가을쯤 제가 뼈대를 제작했던 신협 ‘어부바 캐릭터편’ 광고가 요새 공중파에서 방송되고 있습니다. 귀여운 돼지 캐릭터와 광고의 따뜻한 톤이 잘 어우러진 스톱모션 광고죠. 국내에서 이 정도로 완성도가 빼어난 퍼펫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수 있는 곳은 콤마 스튜디오(이하 콤마)뿐입니다.

몇 달 전 참여한 한율 화장품 광고와 이번에 나온 신협 광고를 통해 콤마가 이제껏 지향해온 스톱모션 스타일를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는데요. 스튜디오 공동 대표인 이희영 감독과 양종표 감독이 창업 초기부터 공들여 왔던 콤마만의 스톱모션이 한껏 물오른 듯 합니다.

콤마가 만든 스톱모션의 중심에는 캐릭터의 절제된 움직임이 있습니다. 미국 스튜디오처럼 과하지 않고 영국 스튜디오처럼 번잡스럽지도 않습니다. 감성적인 화면 구성에,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은 퍼펫의 움직임을 보다 보면 저절로 스토리에 빠져들게 됩니다.

오래 전 국내 스톱모션 업계에서는 클레이 애니메이션이 한창 유행했었죠. 당시 대다수의 스튜디오들이 스톱모션 콘텐츠에서 파생된 2차 상품이라는 덫에 걸려 주객전도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스토리나 캐릭터의 움직임 등 정작 중요한 작품 자체의 완성도에 주력하기보다 겉으로 드러나는 외형에 치중하는 경우가 많았죠. 과한 캐릭터와 세트, 과도한 컬러로 화면 안을 강박적으로 꽉꽉 채우려고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야 상품성이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 시절에 비하면 현재 콤마의 작업은 심플해 보인다고 할 수 있죠. 그런데도 영상을 통해 전하는 감성과 스토리의 힘은 그 당시보다 훨씬 강력합니다. 여백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프레임 속에서 캐릭터의 움직임을 더 돋보이게 만들고 있거든요. 이게 심플해 보여도 결코 심플한 작업이 아닙니다. 관객의 몰입을 지속적으로 유도하는 건 제작 현장에서 왠만한 내공을 쌓지 않고서는 정말 하기 어려운 일이거든요.

콤마는 국내 스톱모션 생태계에서 아주 드문 형태의 스튜디오입니다. 상업 스튜디오임에도 불구하고 무모할 정도로 독자적인 스타일과 제작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거든요. 그런 열정과 용기 덕에 콤마의 작업 완성도는 세계적인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하지만 스톱모션의 가치가 평가절하된 국내 시장에서 그만한 완성도를 꾸준히 유지하는 건 사실 쉽지 않은 일이죠. 그래서 늘 걱정 어린 마음으로 콤마의 행보를 지켜보게 됩니다.

한국 스톱모션 분야는 여러 이유로 인해 업계라고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그 규모가 축소되었습니다. 이런 척박한 상황에서 콤마는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스톱모션 스튜디오의 독자 생존을 실험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결과에 따라 한국 토종 스톱모션의 미래를 예견해 볼 수 있을지 모릅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든 콤마의 노력이 한국 스톱모션의 미래에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은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얼마 전에 아마존에서 주문한 “Gumby Imagined” 책을 받았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이 책을 대충 훑어보다가 뜻밖의 발견을 했답니다. 스튜디오의 스텝 명단에 제 이름이 들어가 있었던 거죠! 프로젝트에 스텝으로 참여하긴 했지만, 책에도 제 이름이 나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거든요. 활자로 인쇄된 제 이름을 보니 영상의 엔딩 크레딧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트 클로키 프로덕션은 1960년대 미국에서 스톱모션으로 만든 TV 시리즈 “Davey and Goliath”로 큰 인기를 얻은 바 있는데요. 2000년대 초반에 이 시리즈를 토대로 장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죠. 당시 저는 이 장편에 나오는 인간 캐릭터의 관절뼈대를 전담했습니다. 이때만 해도 아시아 출신의 관절뼈대 제작자가 미국 장편 스톱모션에 참여하는 건 전례가 없는 일이었어요. 이런 이유로 이 프로젝트는 제게는 뚜렷이 기억에 남는 작업이 되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막바지에는 작업에 참여한 전체 스텝의 사진이 언론에 공개된 적이 있는데요. 저는 지금처럼 한국에서 작업하고 있던 지라 그 사진을 함께 찍지는 못 했죠. 그런데 아트 클로키 프로덕션은 이때도 사진 캡션에 일부러 제 이름을 넣어 주었습니다. 저는 미처 생각치 못했던 부분이었는데 신경 써주니 고맙더라구요. 이러한 이름 기재 여부는 일면 사소한 문제인듯 보이지만, 스텝의 입장에서는 그 의미가 굉장히 크죠. 해당 프로젝트에 참여한 동료이자 담당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을 받는다는 거니까요.

2000년대 초반은 한국에서 관절뼈대 제작을 단순한 제조업 정도로 취급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관절뼈대는 사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가 성립하기 위한 핵심 요소인데요. 당시 한국의 스톱모션 업계에서는 관절뼈대 제작을 하나의 전문 분야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아니었죠. 그저 청계천 철공소에 하청을 맡기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사람이 만든 관절뼈대는 그 한계가 명확했습니다. 게다가 금속 가공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이 캐릭터 그림에 고작 관절 몇 개 그려넣고 뼈대를 디자인하고 제작했다고 말하는 것도 참 기가 막혔죠. 대충 찍어낸 부품으로 대량 생산한 기성품 뼈대를 주문제작 뼈대라고 주장하는 것도 어이가 없었습니다. 제가 만드는 주문제작 뼈대는 각각의 캐릭터에 맞는 맞춤 부품을 기계로 하나하나 직접 깎아서 만듭니다.

이렇게 관절뼈대 제작자에 대한 개념조차 제대로 서 있지 않았던 한국 상황에서 해외의 유명 스튜디오에게 전문성을 보유한 동등한 작업자로 인정을 받으니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이 프로젝트가 마무리되고 난 후에는 스텝으로 참여했던 한 애니메이터에게 좋은 관절뼈대를 사용하게 해줘서 감사하다는 메일도 받았었죠. 프로젝트에 참여한지 15년도 넘은 지금, 이 책을 들춰보다 제 이름을 발견하게 되니 다시금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르네요.

아트 클로키와 조 클로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네요. 두 분 모두 부디 좋은 곳에서 편히 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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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스튜디오에서 의뢰받은 얼굴 움직임을 위한 부분 뼈대 사진입니다. 프로토타입 제작 과정 중 두 번째 버전이구요. 보통 제작 과정은 미완성 상태라 거의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타인에게 제 고민의 흔적을 보여주는 것이 익숙지 않아서 말이죠.

모든 최종본은 프로토타입 단계를 거치고, 다시 기계적인 해석을 통해 마무리합니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완성본의 깔끔함과는 다르게 그 이면의 과정은 거칠고 투박합니다. 위 사진의 버전 이후 다섯 가지 프로토타입을 더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수공과 기공을 사용해 힘들게 여러 가지 테스트 버전을 만드는 이유가 있습니다. 스톱모션 뼈대 제작에 있어 이 과정은 캐릭터의 움직임을 분석하고, 움직임의 특성에 맞게 기술적인 해석을 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