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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마스튜디오에서 제작한 프리메라 화장품 광고입니다. 지난달에 공개되었죠. 늘 그렇듯 저는 관절뼈대로 참여했습니다. 이 광고의 첫인상은 참 꼼꼼하게 만들었다는 거예요. 스톱모션의 다양한 세부 기술을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시청자에게는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화면이 실제로는 의도를 가지고 수작업으로 하나씩 만들어낸 장면이죠.

여느 직장에서 볼 법한 사무실의 책상에 무심하게 올려져 있는 파일철의 디테일. 작은 소품일 뿐인 에어컨이 실제로 작동되듯 움직이는 모습. 와이어를 심지 않고도 재미난 움직을 보여주는 종이 인형.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 책상 위로 떨어지는 조명의 차이를 통해 이끌어낸 화면의 깊이감. 퍼펫의 얼굴에 광채 가득한 화사한 피부톤까지.

 

 

이 정도만 봐도 얼마나 꼼꼼하게 광고를 만들었는지 알 수 있죠. 언젠가 얘기했듯 스톱모션 제작에서 이러한 디테일은 바로 자신감의 표현이자 실력의 지표입니다. 특히 상대적으로 제작 기한이 촉박한 광고에서는 더욱 그렇죠. 뒤이어 후속 스톱모션 광고로 도서관 편도 곧 나온다고 하니 기대가 됩니다.

제가 최근에 참여한 화장품 광고입니다.

스톱모션은 전통적으로 동화적인 감성과 잘 어울립니다. 특히 천 질감을 사용하면 따스함의 표현이 더욱 두드러지는 듯합니다. 동유럽과 일본의 스톱모션이 그러했고, 최근 들어 펠트천 인형의 작품을 봐도 그렇습니다.

퍼펫애니메이션에 강한  <콤마스튜디오>가 이번 화장품 광고에서 스톱모션이 가진 동화적인 감성을 잘 증폭시켰습니다. 1분 정도(?!)의 광고이지만 세트의 크기에서 애니메이팅 표현까지 한국 최대의 스톱모션 스튜디오 <콤마>의 저력을 보여주는 광고 한편입니다.

김우찬 관절뼈대 콤마스튜디오 thinking h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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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스튜디오에서 의뢰받은 얼굴 움직임을 위한 부분 뼈대 사진입니다. 프로토타입 제작 과정 중 두 번째 버전이구요. 보통 제작 과정은 미완성 상태라 거의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타인에게 제 고민의 흔적을 보여주는 것이 익숙지 않아서 말이죠.

모든 최종본은 프로토타입 단계를 거치고, 다시 기계적인 해석을 통해 마무리합니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완성본의 깔끔함과는 다르게 그 이면의 과정은 거칠고 투박합니다. 위 사진의 버전 이후 다섯 가지 프로토타입을 더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수공과 기공을 사용해 힘들게 여러 가지 테스트 버전을 만드는 이유가 있습니다. 스톱모션 뼈대 제작에 있어 이 과정은 캐릭터의 움직임을 분석하고, 움직임의 특성에 맞게 기술적인 해석을 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에 뜻밖의 소식을 접했습니다. 클레이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전설로 일컬어지는 윌 빈튼 감독이 세상을 떠났다는 부고를요. 예전에 한국에 왔을 때 봤던 윌의 유쾌한 모습만 기억하고 있는 저에겐 참 충격적인 소식입니다. 오래 알던 친구를 잃는 건 정말 슬픈 일입니다..

제게 있어 윌은 오랜 친구이자 든든한 지원자였습니다. 제가 뼈대 작업을 시작한 초창기에 제 작업을 테스트해주고, 윌 빈튼 스튜디오에서 함께 일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도 해주었죠. 윌이 제 작업을 좋아해준 덕에 그가 진행한 독립 프로젝트에도 두 차례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윌과 그의 스튜디오는 전 세계에 클레이 애니메이션을 대중화하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윌 빈튼 스튜디오가 바로 그 유명한 라이카(Laika) 스튜디오의 전신이죠. 한국 스톱모션 업계에도 윌 빈튼과 그의 스튜디오가 끼친 영향은 대단합니다. 우리 업계가 형성되던 초창기에는 윌 빈튼 스튜디오의 작품을 참고하지 않은 곳이 없었죠.

사실 윌이 암으로 투병하고 있다는 사실은 10여 년 전에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수술이 잘 되어 완쾌되었다고 했었는데, 그 이후에도 계속 치료를 받았던 모양입니다. 이제는 부디 좋은 곳으로 가서 편히 쉬시길..

윌 빈튼과 김우찬 클레이애니메이션 거장 클레이메이션 WillVinton_WuchanKim

윌의 한국방문, 술 한 잔 거나하게 걸치고 한 컷.

 

Armature 김우찬 감독의 공구 바이스

위 사진은 바이스라는 공구입니다. 참 오랫동안 사용한 공구인데, 제 기억으로도 한 20년이 넘었죠. 용접이나 열 처리 같이 고열을 가할 때나 산 처리 같이 험한 작업을 할 때 사용하는 막바이스입니다. 그래서인지 바이스 여기저기에서 불에 검게 그을린 자국과 산으로 생긴 녹을 볼 수 있습니다.

원래 바이스는 상단의 바이스면이 평평한데, 위 사진에서는 그 부분에 구멍 몇 개가 나 있습니다. 용접 시에 피용접물을 잡기 위해 바이스면에 홀 가공을 했기 때문이죠. 원래 형태에 비해 많이 너덜너덜해져서 공장 구석에 처박혀 있는 공구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바이스만큼은 제가 어떤 작업을 하든 항상 옆에 끼고 있는 최애 공구입니다.

제가 모든 프로젝트에서 테스트 버전, 즉 프로토타입을 만들 때에는 이 바이스를 사용합니다. 프로토타입에서 중요한 부분은 외양이 아니라 기능(뼈대의 움직임)이기 때문에, 이 바이스로 빠르게 용접과 땜을 하여 여러 가지 버전을 테스트합니다.

제 뼈대는 CNC 기계 가공 덕분에 깔끔한 만듦새를 가지고 있어 종종 클라이언트에게 감탄을 받곤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멋진 최종 버전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하죠. 그 과정은 이 바이스의 모습처럼 우아함과는 완전 거리가 멉니다.

이번 주에도 또 다른 가공을 하기 위해 바이스면에 두 개의 구멍을 냈습니다. 제 경력이 길어지는 만큼 이 바이스에도 훈장 같은 흔적이 늘어나는 것 같네요.

기아 자동차 광고에 사용되었던 실물 사이즈 손 관절뼈대입니다. 이전 포스트로 잠깐 보여 드렸었죠. 이번엔 테스트 버전과 최종 버전을 공개합니다. 이번 뼈대는 손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엄밀히 이야기하면, 사람처럼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든 휴머노이드 관절입니다. 

광고를 보면 아시겠지만 캐릭터가 손과 사람으로 번갈아 변신하며 여러 가지 액션을 합니다. 그래서 사진상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검지와 중지의 끝단 볼에는 나사산이 나 있습니다. 검지와 중지를 발처럼 세트 바닥에 고정한 다음, 인형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eYCxQnF2UGo

또 다른 특이점은 이 뼈대의 일부 볼 조인트가 힌지 조인트처럼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실제 인간의 손가락은 한 방향으로만 움직입니다. 그래서 스톱모션용 손 뼈대는 일반적으로 동작이 한 방향으로 고정되는 힌지 조인트 방식으로 제작합니다.

하지만 이 기아 자동차 광고에 사용된 뼈대는 움직임의 방향이 비교적 자유로운 볼과 소켓 방식입니다. 이 뼈대가 손의 역할도 하지만 사람 캐릭터로도 자유롭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손의 역할도 해야 하기 때문에 볼 조인트여도 힌지 조인트의 특성을 최대한 가질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김우찬 감독이 제작한 실제 손크기의 뼈대 Armature by Wuchan Kim, Thinking hand Studio

뼈대 제작 난이도가 좀 높은데도 주문 일정이 좀 빡빡했습니다. 지금 보니 한두 가지 디자인을 수정했으면 더 나았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뼈대를 의뢰한 콤마스튜디오는 멋진 스톱모션을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