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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콤마스튜디오의 TV 시리즈 <보토스 패밀리>의 한 장면입니다. 메인 캐릭터와 그 주변을 둘러싼 새들을 애니메이팅하기 위해 Thinking Hand Studio에서 제작한 ‘리그(rig)’를 장착한 모습이죠. ‘리깅 시스템(rigging system)’이라고도 합니다. 이러한 장치를 한국에서는 대개 ‘워커’라는 이름으로 부릅니다.

스톱모션 작품을 애니메이팅할 때에는 퍼펫 움직임의 연속성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첫 프레임을 찍고 퍼펫을 미세하게 움직인 후, 그 다음 프레임을 찍는 스톱모션 애니메이팅의 특성상 작업 중간에 퍼펫의 동작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결과물의 움직임이 굉장히 부자연스러워지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애니메이터가 의도적으로 퍼펫을 움직이지 않는 한, 퍼펫은 멈춰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점프를 하거나 날아다니는 동작에서는 퍼펫이 공중에 떠 있는 프레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퍼펫은 그 자체로 허공에 멈춰 있는 게 불가능하죠. 이 때 필요한 장치가 바로 ‘리그’입니다. 리그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지만, 그 원초적인 역할은 공중에 떠 있는 퍼펫을 잡아주는 것입니다. 그래야 허공에 있는 퍼펫이 세트 바닥에 떨어지지 않고 바로 이전 프레임에서 하던 동작 그대로 멈춰 있을 수 있죠.

 

 

스톱모션 초기에는 리그 역할을 위해 실, 유리, 철사 등을 활용했습니다. 지금은 리그 또는 리깅 시스템이라고 하는 장치를 따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데, 그 형태는 나라별로, 스튜디오별로 다를 수 있습니다.

두꺼운 알루미늄 철사나 실, 유리 등을 사용하는 단순한 리그부터 복잡해 보이는 기어 리깅 시스템까지 그 방식은 다양합니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기초적인 방식은 관절뼈대 부품을 이용한 리그로, 아마존닷컴 등에서 온라인으로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대형 스튜디오에서는 리깅 팀을 따로 운영하면서 자체적인 리깅 시스템을 개발합니다. 프로젝트에 맞게 리깅 시스템을 새로 제작하거나 커스터마이징하죠. 최근에는 리깅 시스템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는데요. 리그가 그 기본 역할을 넘어서서 촬영 시간을 단축하고 제작비를 절약하며 CG 합성을 하는 데에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떨어지는 유자와 메인 캐릭터에 장착된 워커 – 한율 화장품 광고

사진에 나온 모든 리그는 기존에 사용되던 기어 방식의 리그를 변형한 시스템입니다. 기존 리그가 노후된 데다, 스톱모션 애니메이팅에 사용하기에는 몇 가지 불편한 점이 있어 제가 업그레이드했죠. 아마도 스톱모션을 잘 모르거나 엔지니어링에 대한 전문지식이 부족한 사람이 기존 리그를 설계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제가 업그레이드한 리깅 시스템도 100% 완벽하다고는 말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사용하면서 개선해야 할 부분이 또 나올 수 있겠죠. 미래에는 또 다른 누군가가 스튜디오의 환경에 더 잘 맞는 리그, 좀 더 디테일한 움직임을 위한 리그를 만들어나갈 겁니다. 제대로 된 전통이란 이렇게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요.

This is a proof-of-concept prototype made in 2012 for a geared rig. It was for a friend studying at the National Film and Television School (NFTS) in the UK. I always make a proof of concept before I start working on an actual product. Based on this prototype and the actual geared rig, I’ve recently built a new geared rig for a stop-motion studio working on a TV series at the moment. I’ll unveil the new version of this geared rig soon.

뼈대이건 워커이건 제가 디자인한 제품은 완성 전에 항상 프로토타입 단계를 거칩니다. 요즘에는 디지털 기술이 워낙 발전해 제가 디자인한 제품의 모습을 컴퓨터 모니터에서 캐드를 통해 미리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품의 종류에 따라서는 실물을 직접 손으로 만들어보는 것이 더 효율적일 때가 있습니다. 복합적인 움직임이 들어가는 제품의 경우에는 특히 더 그렇죠.

위 사진은 2012년에 만든 워커의 컨셉용 프로토타입입니다. ‘워커’란 스톱모션에서 캐릭터를 지지하고, 캐릭터가 걷고 뛰고 나는 액팅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장비입니다. 해외에서는 워커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주로 리그(rig)라는 명칭으로 불립니다.

이제까지 현장에서 써왔던 워커는 구조적으로 문제가 많았습니다. 워커의 만듦새가 굉장히 초보적이면서 허술했고, 정밀도나 가공 마무리 측면에서도 지적할 만한 결점이 수두룩했기 때문이죠. 사실 워커 자체는 그렇게 복잡한 메커니즘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막상 제작하려면 생각보다 까다롭습니다. 워커가 퍼펫의 하중을 꾸준히 견디면서 부드러운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제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여러 스튜디오에서 제게 위와 같은 스타일의 워커 제작을 요청한 적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작하지 않은 이유는 아무래도 예산 문제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에 언급한 것처럼 기존 워커의 여러 가지 오류를 수정하고 안정적인 움직임이 구현되도록 하려면 시간과 노력이 생각보다 많이 투입될 수밖에 없는데, 주문 수량도 그리 많지 않거든요.

이런 이유로 워커 주문을 받지 않고 있었는데, 2012년 영국 국립영화학교(NFTS)의 작품에 참여하면서 워커를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NFTS는 지속적으로 거래해온 클라이언트이기도 했고, 또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던 친구의 작품이라 참여 결정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작품의 워커를 제작하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당시 워커에 필요했던 기능 자체가 딱 정해져 있고 단순 명확했기 때문이죠. 위 사진은 그 때 만들었던 프로토타입입니다.

당시 만들었던 워커의 메커니즘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올해에는 새로운 워커를 디자인해 제작했습니다. 애니메이터의 액팅을 잘 보조하여 보다 정교하고 부드러운 움직임을 구현할 수 있도록 설계하였습니다. 이 새로운 워커는 몇 주 전부터 현장에 투입되어 애니메이터들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위 사진의 2012년 버전 프로토타입이 2017년에 어떻게 탈바꿈했는지는 블로그를 통해 곧 공개하겠습니다.